생명체들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지적 설계론’ 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 게이들아

오늘은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필두로 하여

발전한 현대 진화론을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지적 설계론에 관한 글을 써보고자 해.

지적 설계론은 현재 생물들의 진화를

어떠한 지적 (지능을 가진) 설계자가 설계, 창조하였다는 주장인데

이를 논박하기 위해선 우선 진화론에 대해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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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선택의 기본 원리

진화론의 기본을 이루는 원리인 자연선택은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게 될수록

그만큼 다음 후속 개체를 남길 확률이 늘어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점차 개체의 생존 능력이 강화될,

즉 진화될 것이라는 주장이야.

물론 현대 진화론에서는 돌연변이 등의

개체가 급작스럽게 발전하는

우연적인 대(大)진화도 인정하지만 진화의 주 요인은 이 자연선택에

의한 점차 발전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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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 진화학자인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는 다들 한번 들어봤으리라 생각해.

현대의 진화론은 모두 이 자연선택이 거짓이라면 성립될 수 없다고 해.

심지어 자연선택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진화론을 넘어 물리, 사회 등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

다시 말해, 현대진화론이 실제와 다름을 보이려면

이 ‘자연선택’을 공략하는 것이 정답이란 소리야.

자연선택이 거짓임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현재 존재하는 생물 중 자연선택으로는

진화할 수 없는 생물이 있다는 것을 보이면 돼.

즉 반례를 드는 거지.

자연선택은 ‘모든’ 진화에 적용되는 법칙이니까

단 한개의 진화라도 자연선택이 설명할 수 없다면 자연선택설은

거짓이 되거든.

그래서 지적 설계론 지지자 중 한명이었던

마이클 베히는 자연선택을 반박하기 위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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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의 구조

인간의 눈은 매우 깨끗한 상(이미지)를 제공해.

이러한 깨끗한 상을 만들기 위해서

들어오는 빛의 양을 고려하여 동공의 크기를 늘린다든가

원근에 따라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등의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이러한 단편적인 기능을 제치고라도

눈에서 일어나는 세부적인 화학적 반응들도 매우 복잡해.

이들은 눈의 조직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일어나지.

위 이미지들 중에서 어느 한 조직이라도

잘못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눈은 상을 맺을 수 없게 되고 말거야.

어떤 기관의 진화 전 단계를 그 기관의 ‘선대체’ 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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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의 진화과정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팔은 날개의 선대체라고 할 수 있겠지.

앞서 설명한 눈처럼

어떤 기관의 구성품들이 각각 긴밀한 상호관계를 이루면서

그 기관의 기능을 수행할 때

그 기관이 ‘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을 띈다고 얘기해.

그 상호관계가 너무나도 긴밀하여

기관의 구성품들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해지면

바로 그 기관의 기능을 상실해버리는 특성이지.

따라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기관은

자연선택으로 진화할 수 없다는 것이 베히의 주장이야.

자연선택은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각 조직들이 부족했던 것들을 없애나가면서

차근차근 진화하는 과정인데

눈에서 2% 모자란 눈의 선대체는

눈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즉 어느 한 조직이라도

부족하면 그 기관의 기능을 상실하는 특성 때문에

본다는 제 기능을 할 수가 없으므로

생존에서 이득을 볼 수 없게 돼.

따라서 눈의 진화에선

자연선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눈의 진화에 대해서는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는 것이

베히의 주장이었어.

“돌연변이로 설명하면 되지 않노?”

라고 생각하는 게이들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돌연변이로 눈의 진화를 설명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돌연변이, 즉 엄청난 행운이 따라야하기 때문에

이는 설득력이 없어.

따라서 베히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기관들은

자연선택 대신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 결론이 바로

지능을 가진 누군가가 이러한 진화를 설계하였다는

‘ 지적 설계론 ‘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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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된 건축물처럼 복잡한 우리 생명체는

설계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만약 지적 설계론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지적 설계론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어.

” 그래. 설계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설계자는 누가 만들었는데? “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지닌 기관 (ex. 눈)

을 설계할 정도의 뛰어난 지능을 가진 지적 설계자가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 역시도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지적 설계론의 주장에 의하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개체는

자연선택이나 돌연변이로는 만들어질 수 없으므로

그 설계자는 또다른 설계자가 만든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

이처럼 한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허용하면

다른 무한한 설계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되고

우리 우주는  유한하므로 이는 모순이야.

지적 설계론이 거짓이라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띈 기관은

자연선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일까?

애초부터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존재하지 않았어.

베히는 진화 도중 어느 기관 (ex.눈)이 반드시 100의 기능을 발휘해야만

생존에서 이득을 거둔다는 착각을 했어.

눈을 예로 들어보면

옛날에는 눈이라는 기관 자체가 없었으므로

현재보다 뒤떨어지는 흐릿한 이미지를 만드는 눈이라도,

심지어 명암만을 구분해주는 단순한 눈이라도

생존에 확실히 도움이 됐겠지.

어떤 사람에게 실명과 약시(시력이 나쁜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반드시 약시 쪽을 택할 거야.

잘 안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는게

눈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것보다 도움이 되니깐 말이야.

현재의 눈이 100의 기능을 한다고 하면

진화 과정에서의 눈은

1, 2, 2,5, … 등으로 점차적으로 진화하여

현재의 100이라는 수치에 이르게 된거야.

결국 베히가 주장했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환원 가능한 복잡성들이 수차례 중첩되어

환원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 뿐이지.

3줄요약

1. 우리 생명체들을 설계했다는 설계자가 존재한다.

2. 그럼 걔는 누가 만들었는데? => 또다른 설계자 필요

3. 무한한 설계자들이 필요하므로 이는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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