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세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알아보자 1

최근에 스베누 사태를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세가가 떠오르길래 써보기로 했다.

다 아는 얘기, 노잼이라면 일단 미안하고,

본인은 90년대 세가 팬보이로 살아온 아재로서 세가 영광의 순간을 함께한 시대적 동반자다보니

사람들에게 세가에 대한 이야길 하는걸 좋아한다.

요즘에 와서 세가라 하면 어린 아해들은 단순히 풋볼매니저나 유통하는 회사정도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8.90년대를 살아온 아재라면 세가란 이름을 듣는순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떠오를거다.

일본에 영향을 많이 받은 8.90년대의 국내 콘솔 게이머들은 세가하면 그냥 늘 망하는 회사란 이미지가 팽배하고,

실제로도 그렇기는 한데, 세가에게도 단 한번 폭풍같은 리즈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그 리즈시절이 어떻게 찾아왔고 어떻게 망했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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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세가의 이력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세가가 닌텐도의 짭퉁,

그러니까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으로 잘 나가니까 뒤늦게 게임으로 뛰어든 근본없는 회사쯤으로 오인하기도 하는데 이건 세가에 대한 모독이다.

오히려 비디오 게임에 근본이 없기로 따지자면 닌텐도가 근본이 없는 회사다.

물론 닌텐도보다 역사는 짧다.

세가는 좀 복잡한 인수합병과정에서 탄생한 기업으로 근원을 추적하자면 태초에 일본회사가 아니었다.

시작은 1940년대 일본 미군기지에 슬롯머신을 납품하던 스텐다드 게임즈. 이게 훗날 서비스 게임즈로 분할되었다는데 어쨌든.

어디서부터 추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현재의 사명, 세가 엔터프라이즈로 정립된 시기는 1964년이다.

이는 합병에 의해 개명된 사명이고 본래는 서비스 게임즈와 로젠 엔터프라이즈란 두 회사가 합병한 건데,

이 두회사 모두 일본에서 활동하던 미국회사로 주로 아케이드 기기를 납품 유통하는게 업이었다.

서비스 게임즈는 미국에서 슬롯머신 단속이 심해지면서 슬롯머신을 일본에 수출하는걸로 성장한 회사고,

로젠 엔터테이먼트는 미군을 상대로 미국의 아케이드 머신들을 납품하던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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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말이야.

이들은 합병후 직접 아케이드 머신을 설계해서 일본내에 유통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성공하면서

일본내 아케이드 시장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본격적인 일본내 아케이드 업체로 거듭나고 그 와중에 일본 중소기업들도 하나씩 인수해나간다.

1969년에는 미국의 걸프 앤 웨스턴이란 회사가 세가 엔터프라이즈를 인수하고 세가는 걸프 앤 웨스턴의 자회사가 되어 일본과 미국의

아케이드 사업을 중점적으로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에 이르러 걸프 앤 웨스턴이 세가를 분할 매각. 미국의 세가 지분은 미국회사에게 팔렸고

세가의 창립자인 데이비드 로젠(전 로젠 엔터테이먼트 사장)은 일본의 세가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CSK홀딩스의 투자를 받게 되어, 결국 세가 엔터프라이즈는

일본 CSK홀딩스 산하의 일본 회사로 최종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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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세가에 인수당한 유통업체 에스코 무역의 사장 나카야마 하야오. 그리고 CKS홀딩스의 회장 오카와 이사오.

나카야마 하야오는 곧 세가의 CEO가 되어 세가의 흥망성쇠를 만드는 세가의 정신 그 자체가 되고, 오카와 이사오는 세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

여하튼 이런 아케이드 사업을 하며 세가는 성장을 거듭한다. 그러다보니 세가가 비디오 게임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냥 필연이었다.

아케이드 시장의 판도가 비디오 게임으로 전환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다 잘 알고있을 스페이스 인베이더 붐 같은 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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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인베이더.

잘들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에서 100엔 동전 품귀현상을 일으키며 연일 뉴스를 장식했던 문제아.

셀러리맨이 봉급날 이 기계에다가 월급봉투를 다 털어넣고 망연자실했다는등의 지금에와선 믿지못할 일화들이 많다. 

카드 화투를 찍어팔다가 식품업, 유통업, 운송업, 완구업을 하다가 우연히 완구가 얻어걸려서 여기 매진하다가 그게 비디오 게임으로 발전한 닌텐도와는 달리

세가는 온리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다. 해서 게임에 대한 프라이드같은게 좀 있었던지,

가정용 게임기 사업에 있어서 굉장한 방심을 하고 마는데 이게 차후 수십년, 아니 최후까지 세가의 발목을 잡는 잘못끼운 단추역할을 하고 만다.

1980년대초반 일본.

가정용 콘솔사업은 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아타리 쇼크라는걸로 시장이 축소되는 와중이었던 것이 1980년대 초반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상황이 달라서 가정용 콘솔사업은 불확실한 영역이었다. 이게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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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부터 북미의 영향으로 퐁을 베이스로한 이런저런 조잡한 가정용 게임기가 일본내에서 판매되고 있기는 했다.

먼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건 에폭사라는 중소기업으로 카세트 비전이라는 아타리 짭퉁을 만들어 팔았는데 이게 대박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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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폭사의 카세트 비전. 일본 최초의 본격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다. 성능은 아타리와 엇비슷한 수준.

게임들도 기존 인기 아케이드 게임들의 데드카피가 대부분.

카세트 비전의 성공을 보고서야 가정용 콘솔사업이 블루오션이라는 걸 깨닫고 업체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지만,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비디오 게임기 사업은 그냥 완구 카테고리의 하나로 그 시장규모가 작아서 대기업이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고

결국 중소업체들이 간을 보는데 개중 여기에 노하우가 있던 두 기업이 닌텐도와 세가다.

닌텐도는 완구업체로서의 노하우와 동킹콩같은 아케이드 게임 사업, 게임워치를 성공시킨 실적이 있었고

세가는 온리 아케이드 게임업체로서의 경험이 있었지.

결국 거의 동시기에 두 회사가 가정용 콘솔을 발매하는데 여기에서 두 회사의 명확한 관념이 드러나고 여기에서 성패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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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심의 고성능 게임기답지 않은 조촐한 디자인 붉은색, 흰색의 도색, 고장률 높은 초기 게임패드는 모두 원가절감을 위한 노력의 결과.

이와중에 요코이 군페이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진 세계최초 십자패드의 위엄을 보라. .

패미컴은 지금의 아해들이야 그냥 우습게 볼지 몰라도 당시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몬스터 머신이었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한세대를 건너뛴 콘솔머신이었는데 ps2에서 갑자기 ps4로 전환된 정도의 임팩트라고 보면된다.

당시 아케이드 게임을 거의 완벽하게 이식할수 있는 유일한 콘솔이었고 이는 당시엔 충격 그자체였다.

더욱이 가격마저 저렴해서 이건 도대체 외계인을 고문한건지 회사가 사체를 쓴건지 분간이 안갈지경이었는데,

실제로 닌텐도는 여기에 사운을 걸었다.

손실을 감수하며 저렴하게 콘솔을 보급하고 그 보급된 힘을 바탕으로 소프트로 이익을 낸다는 기초전략이 이때 수립되었다.

이때 패미컴이 망했다면 닌텐도도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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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세트 비전의 동킹콩 데드카피와 패미컴 런칭 타이틀이었던 동킹콩. 패미컴판 동킹콩은 아케이드 버전과 거의 같은 퀄리티다.

패미컴은 런칭당시 업계인들 입에서 ‘이건 사기다!’라는 말이 나왔을정도의 미친 고성능이였다.

반면 세가의 기기는 패미컴과 동년 동일에 발매된 주제에 패미컴에 한참 후달리는 성능으로 나왔다.

근데도 가격은 패미컴보다 비싸니 이건 뭐 패망예약일 수밖에 없었지.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아예 사운을 걸고 패미컴에 오링을 해버린 닌텐도와 달리 세가는 가정용 콘솔사업을 단지 부가사업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업은 여전히 아케이드 사업이었고 이건 회사 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당시 직원들 말로는 아케이드 사업부에서 가정용 게임기 사업부로 보직이동이 되면 그걸 좌천이라고 여겼다 한다.

이런 마당이니 애초부터패미컴에 이길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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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컴과 동년 동월에 발매된 세가의 SG-1000

성능은 대략 MSX1과 엇비슷. 그러니까 재믹스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세가는 그야말로 초전박살이 나며 깃발하나 꼽지 못하고 철퇴하고 패미컴은 폭발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기존 쉐어1위인 카세트 비전을 압살,

카세트 비전이 형성해놓은 콘솔시장을 접수하다 못해서 그 시장을 그야말로 파도처럼 넓혀나가기 시작한다.

패미컴의 엄청난 성공을 본 세가는 그제서야 가정용 콘솔 시장이 얼마나 노다지인지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절치부심. 지속적으로 콘솔시장의 진입을 시도하지만 이는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일본에서 세가를 ‘투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별명은 늘 패미컴에게 쓸려나가면서도 콘솔을 줄기차게 출시하던 이 시기의 행보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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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1000의 후계기 SG-1000 2 패미컴의 십자패드를 보고 재빨리 배껴넣은 것을 볼수있다.

물론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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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SG-1000.2의 후속기종 세가 마크3. 일본에서만 판매되었다……지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유령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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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마스터 시스템. 세가마크3의 해외판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가 마크3를 재설계해서 업그레이드한 사실상의 후속기다.

패미컴을 압도하는 성능을 제대로 내기 시작한건 이 기종부터.

1986년에 유럽, 남미에 판매되었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에서 라이센스를 구입해 판매.

삼성에서 TV광고까지 때렸으니 나이좀 있는 아재들은 이 디자인 친숙할거다.

1987년 일본에서 세가마크3의 후계기로 발매되었으나 당연히 망했다.

반면 닌텐도의 마수가 닿지않은 유럽과 남미에서는 꽤 팔렸고, 이 덕에 세가가 콘솔사업을 접지 않을 수 있었다고도 한다. 

1985년이 되어서야 세가는 비로서 패미컴을 능가하는 성능을 가진 세가마크3을 발매하지만 역시 일본내에서는 늘 하던것처럼 로켓단마냥 쓸려나간다.

이때즈음해서는 패미컴이 그야말로 일본내 가정용 콘솔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시기라 게임개발 업체들,

소위 서드파티들이 닌텐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던 시기였다.

해서 서드파티들은 닌텐도 응딩이 뒤에 숨어 세가의 게임기에는 참여를 하지 않았고,

세가는 자사의 게임기에 발매될 게임을 다 스스로 만들었다.

이 시절 세가는 아케이드 게임 개발진들이 아케이드 게임과 가정용 게임을 모두 개발하며 갈려졌는데 이 처참한 혹사가 훗날 이들을 괴물로 거듭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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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들이  버철 파이터, 데이토나, 버철 스트라이커같은 미친게임들을 찍어내던 am2가 되고 

세가를 90년대 세계최강의 아케이드 업체로 올려놓는 일등 공신들이 된다.

1988 메가드라이브

세가가 실패와 출혈을 거듭하면서도 가정용 콘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세가의 ceo자리에 있던 나카야마 하야오의 고집이 컸다고 한다.

이 사람은 가정용 콘솔이야 말로 세가의 미래라고 확신했고, 이 때문에 세가의 임원진들,

특히 자체적 스폰서라 할 수 있는  CSK 홀딩즈의 오카와 이사오 회장과 늘 충돌했다고 알려져있다.

여하튼 이 당시 나카야마 회장은 대단히 공격적인 행보로 닌텐도와 정면승부를 벌이려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16비트 기기 메가드라이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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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의 컨셉은’ 세가가 자랑하는 아케이드 게임을 집에서도’ 였다. 이 때문에 당시 세가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16을 그대로 때려박았고.

덕분에 세가 아케이드 인기게임들이 그 모습 그대로 메가드라이브에 이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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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임들 말이지. 삼성에서 세가 마스터 시스템에 이어 메가드리이브역시도 수입해 판매하면서 역시 티비 광고를 때려댔는데

주로 이런 세가 아케이드 게임들이 광고화면을 장식했으니 잘은 몰라도 게임화면이 눈에 익은 아재들이 많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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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위에 에프터 버너는 사실 이런 체감형 게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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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히트를 친 행온이란 바이크 게임역시 이런식의 체감형 게임이었다.

세가 아케이드 게임은 이 당시 이런 체감형 게임들로 연일 대히트를 치고 있었는데 이런 게임들이 메가드라이브로 이식되면서

체감게임으로서의 매력이 팍 죽어버리는 부정적인 결과도 가져왔다.

메가드라이브의 컨셉트, 기기의 세일즈 포인트는 바로 세가의 강점인 아케이드 게임을 가정용 콘솔로 구현한다는 것이었지만,

88년 일본내 런칭은 폭풍패망해버리고 만다. 무려 전세계 최초의 차세대 기기임에도 일본유저들은 놀라울정도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첫째로는 그동안 가정용 콘솔로 쌓아올린 세가의 이미지가 똥씹망이란 것일테고

둘째로는 아케이드 유저와 가정용 콘솔 유저층이 세가의 생각보다 간극이 심했으며

셋째로 메가드라이브의 아케이드성 게임들은 일본내 가정용 콘솔의 트랜드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80년대 후반 일본 콘솔시장에서의 트랜드는 배터리백업의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드퀘와 파판이 수백만장 팔아치우던 리즈시절에 아케이드 액션 슈팅게임은 별 힘을 쓰지 못했다.

넷째로는 가격. 비교적 저렴한 패미컴 가격에 익숙해진 일본 초딩들에게 메가드라이브의 가격은 엄마 저거 사줘라고 말할 엄두도 나지 않는 애미디진 가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본내 대부분 가정용 콘솔 유저들은 10년 닌텐도 장기독재에 형성된 닌텐도 팬보이들이었다.

마리오, 드래곤 퀘스트, 젤다. 이런 수백만장의 프렌차이즈들은 닌텐도의 콘솔로 발매될 것이 명확했다.

닌텐도는 10년의 독재동안 수많은 거대 ip를 만들어놓고 있었고 이시기 일본내 유저들은 대부분 이런 ip들의 팬보이 이기도 했다.

반면, 메가드라이브에는 이런 거대 ip가 존재하지 않았다.

세가마크 시절부터 서드파티도 없이 늘 혼자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의 이식만 해온 세가에게 이런 자산이 있을리 없다.

일본내있는 극소수의 세가팬들, 메가드라이브를 구매하는 소수는 그저 아케이드 팬이지 세가의 가정용 게임기의 독자적 ip를 기대하고 구입하는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 세가는 이를 깨닫고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발악을 해보지만 일본내 암울한 메가드라이브 판매량을 반등시키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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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서 한글판으로 로컬라이징 출시했던 작품들이기에 해본 아재도 있을거다.

세가가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메가드라이브에 RPG 타이틀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들.

일본내 거대 서드파티들은 상대를 안해준 탓에 소규모 영세 게임개발사를 발굴해서 돈을 쏟아부어 퍼블리싱한 RPG게임들이다.

물론 메가드라이브의 판매량 견인에는 전혀 도움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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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에서 직접 출자한 회사에서 제작, 혹은 자사에서 개발팀을 꾸려 직접 만든 RPG도 있다. 세가가 이렇게 외롭다.

1989 북미

일본내에서 메가드라이브가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세가는 북미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그러나 북미에서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세가는 일단 조심스럽게으로 북미시장 진출을 모색한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닌텐도 독과점 상태였던 북미시장은 사실 바늘하나 꼽을 공간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세가는 우선 아타리와 접촉. 아타리의 유통망을 통해 메가드라이브를 북미에 꽂아 넣으려 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세가의 이미지(가정용 게임기 한정)는 북미에서도 시궁창이었고,

이전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 폭망하고 세가 북미지사를 폭파시킨 꼴을 모두 보아온 북미의 업체들은 모두 세가를 병신취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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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와 회장를 비롯한 세가 본사 임원진들은 이런 반응이었지만

그러나 나카야마 하야오는 포기하지 않고 임원진들의 반대에도 불구 세가에 세가 아메리카를 새로 설립하고 직접 유통을 결심하게 된다.

제네시스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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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판 명칭은 세가 제네시스.

‘메가 드라이브’는 세가본사에서 기기명 공모를 통해 300개의 이름중 선택한 성과였는데

본사의 이런 고심 고뇌가 무색하게도 세가 아메리카는 그냥 한큐에 개명해버렸다.

세가가 아타리와 접촉했을 당시, 아타리의 임원 중 세가의 제의를 솔깃하게 들은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이클 카츠라는 사람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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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Katz

세가 아메리카 1대 사장. 스베누식 마케팅의 대가.

황사장과 다른점이라면 큰그림을 보고 돈을 들이 부었다는것.

이 사람은 당시 게임업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마텔전자에서 인텔리비젼을 런칭해서 아타리 독과점 상태였던 북미시장에서  마텔전자의 쉐어를 어느정도 닦아놓은 경력이 있었다.

마이클 카츠는 메가 드라이브라는 기기가 현존하는 유일한 16비트 기기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고 이 차세대기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세가와의 조율 끝에 아타리를 나와 세가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마이클 카츠는 일본 본사의 세가 임원들과는 전혀 다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다.

세가본사의 임원들은 자사의 아케이드 개발력을 맹신하는 경향이 강했고,  아케이드 게임부심이 대단해서

자신들의 훌륭한 아케이드 게임이 이식된 메가드라이브가 왜 일본내에서 실패했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북미에서도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내세운 마케팅을 원했지만 마이클 카츠는 이를 거부한다.

그는 닌텐도가 가진 쉐어를 뺏어오려는 세가의 10년간 지속된 오래된 전략을 수정한다.

쉐어를 뺏어오는게 아니라 만들어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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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늘 포화입니다. 그걸 깨고 나오는게 기업가들이죠.

북미시장에서 닌텐도는 가정용 콘솔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으나 마이클 카츠는 그 연령대에 주목했다.

대부분 저연령대, 초등학교 학생들이 닌텐도의 유저였으며 10대 중후반의 틴에이저들에게 닌텐도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닌텐도 아메리카도 이점을 인식하고 이런 틴에이저들을 노린 광고, 게임들로 공략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 지속적이지도, 필사적이지도 않았다.

이미 기존의 시장으로도 닌텐도는 아쉬울게 없었기 때문이다.

북미의 틴에이저들에게 닌텐도는 애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마리오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한들 그건 어린시절 잠깐 가지고 노는 것일 뿐.

이들의 관심사는 팝스타, 스포츠 스타들이었다.

마이클 카츠는 이점에 착안했다.

NINTENDON’T!

세가 아메리카는 게임 개발을 위해 닌텐도의 영향력을 이겨내며 서드파티를 유치하는데 돈과 시간을 쓰는 대신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 당대 스포츠 스타들과 계약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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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몬타나, 제임스 더글라스, 에반더 홀리필드, 토미 라소다 팻 라일리를 차례로 영입하고 급기야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마이클 잭슨마저 끌어들였다.

닌텐도가 마리오를 광고에 내보내는 동안 세가는 이런 10대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여 NINTENDON’T!를 외치게 했다.

이는 잠깐사이에 엄청난 화제를 몰고왔고 게임에 관심이 없던 틴에이저들에게도 세가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마치 닌텐도는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거고 세가 제네시스는 닌텐도를 졸업한 어른들이 사야할 핫한 차세대 아이템인 것처럼 보였다.

그 유명한 NINTENDON’T! 광고. 양키성님들의 위엄과 패기를 느낄수 있다.

아재들이 추억할만한 동시기 한국의 광고. 도저히 같은 게임기라고 생각이 안든다. 

닌텐도가 미처 점령하지 못한 곳을 노리는 것이 세가 아메리카의 전략이었고 마이클 카츠가 내린 결론은 스포츠 스타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 게임이었다.

모든 서드파티들이 닌텐도 왕국아래서 배부른 돼지로 살아가는 와중에 세가는 닌텐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소규모 영세개발업체들을 물색했고,

그중에 EA가 있었다. 당시 EA는 오늘내일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소규모 회사로 메가드라이브에 매든 시리즈를 낸 것이 인연이 되었다.

매든 시리즈를 높게 평가한 세가는 EA에 전폭적인 자금지원을 하며 자사가 계약한 스포츠 스타들의 게임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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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사커. 94년 메가드라이브 독점작.

세가의, 세가에 의한, 세가를 위한 프렌차이즈로 시작되었다

EA 스포츠 게임은 메가드라이브, 아니 제네시스를 발판으로 승승장구 하게되고 회사는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데,

사실상 세가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EA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는 현재도 과거 세가 임원들과 EA임원들이 만나면 하는 농담거리라고 한다.

소닉 더 헤치호

북미 스타들을 이용한 초반 마케팅 러쉬로 강하게 어필했던 세가였지만 입지는 여전히 다져지지 않았고 세가가 가진 이미지는 여전히 최악이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가 아니라 서드파티들과 에널리스트들에게 그러했다.

세가의 서드파티로 참여한다는 소리만 들려도 해당업체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형국이었고,

이는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가가 다양한 게임을 빠르게 공급하기 힘들게 했다.

더불어 세가 제네시스는 제대로 유통망을 뚫지도 못했다.

미국내 대형마켓들은 아예 제네시스의 입점을 거부했다.

이런점들이 발목을 잡으며 마이클 카츠는 런칭이후 제네시스의 판매량을 극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고 이는 세가 본사임원들의 공분을 샀다.

세가본사는 세가 아메리카가 요구하는대로 수천만달러를 들여 스타 마케팅을 했고 그 투자에 대한 결과를 단시간에 보여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결국 세가 본사는 제네시스 런칭 1년도 안되어 마이클 카츠를 해임시켜버렸지만 그 마케팅이 실패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가 주도한 스타 마케팅은 차후 시간을 두고 착실히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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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가 안팔린게 무조건 마이클의 탓이냐. 전 그렇지 않다고 봐요.

세가본사는 마이클 카츠를 짜르고 그 후임으로 톰 칼린스키라는 인물을 세가 아메리카의 사장에 앉혔다.

그 역시 마이클 카츠와 마찬가지로 마텔전자 출신의 베테랑이었지만

그는 게임업계라는 특수한 시장보다는 이미 완구사업쪽에서 잔뼈가 굵은 이미지 메이킹의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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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 Kalinske

“마이클 잭슨이 마리오가 될수는 없습니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고 본사에 요구한 사항은 이렇다.

제네시스 가격을 낮출수 있는 한계점까지 낮추라.  지금은 일단 게임기 팔아서 마진남길 생각은 집어치우는게 좋을거다.

니들은 자꾸만 아케이드 게임가지고 마케팅하라고 그러는데 그딴 개소리는 두번다시 하지마라

지금 니들이 개발중인 소닉을 완성되는 즉시 북미 제네시스 번들로 포함시켜라.

이 막무가내 요구를 들은 세가 본사 임원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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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이런 반응

모든 요구사항이 세가 본사 임원진들의 폭력성을 자극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상황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적이 되어버리게 만든건 세 번째 소닉 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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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들. 그거슨 게임기를 사면 기본으로 딸려오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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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는 슈퍼마리오가 번들이었지만, 이는 슈퍼마리오가 일본에서 충분한 수익을 낸 이후 북미출시에 결정된 사안이다.

반면 소닉은 아직 발매도 되기 전부터 세가 아메리카에서 번들을 요청해서 세가 본사를 자극했다. 

잠깐 소닉에 대해 보충하자면,

세가에서 마리오와 대치할 자사의 마스코트를 만들려던 시도는 80년대부터 있었다.

대표적으로 알랙스 키드라는 캐릭터가 있었지만 보기좋게 망하고 세가는 이런시도를 접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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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아니잖아

그러나 세가 아메리카에서 다시한번 요청이 들어온다.

알랙스 키드같은 멍청한거 말고 틴에이저들에게 어필할 ‘핫’하고 ‘쿨’한 이미지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즉 소닉은 어디까지나 북미시장 공략중 탄생한 이미지 캐릭터였고 실질적인 판매대상도 일본이 아닌 북미쪽이었다.

실제 소닉의 주요 매출은 북미에서 달성했고 인기도 북미쪽에서 얻었다. 소닉발매당시 일본에는 메가드라이브란 기기자체가 거의 깔리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사실상 듣보잡에 가까웠고, 일본에서 소닉이 입지을 얻은 것은 북미쪽에서 대박을 터트린 후 그 인기가 역수입된 면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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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태생이지만 원래 일본에선 좆도 관심없었던 캐릭터.

사실 지금도 일본에선 별 관심없다.


소닉은 세가가 전력투구해서 개발하고 있는 야심찬 IP였다. 이걸 번들로 포함시키라는 건 수익성을 포기하라는 뜻 아닌가!

라는 이유로 임원진들은 대거 반발했고 콜린스키와 마찰을 빚었다.

사실 세가 본사와 세가 아메리카는 사이가 대단히 험악했고 차후에는 더 험악해지지만.

적어도 이때의 갈등은 마이클 카츠 전 사장이 남긴 유산이었다.

세가 아메리카가 되지도 않는 마케팅으로 수천만 달러를 허공에 날렸다고 생각한 세가 본사는

세가 아메리카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 버티는게 관례가 되어 있었다.

급기야 콜린스키가 사표를 쓰기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나카야마 하야오가 콜린스키의 편을 들어주며 이 소닉 번들은 극적으로 실현이 된다.

그리고 이 소닉번들은 소닉이란 캐릭터의 미국내 보급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장기적으로든 단기적으로든 제네시스 뿐만아니라 세가자체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는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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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본사와 싸워 쟁취한 세가 아메리카의 위대한 결단.소닉 번들.

콜린스키가 메이킹한 세가 제네시스의 이미지의 핵심은 바로 소닉에 있었다.

마이클 카츠가 틴에이저들을 타겟으로 닦아놓은 마케팅 기반위에서 콜린스키는 세가 제네시스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닌텐도를 비웃고 거만하며 쿨하고 반항적인 이미지.

이를 대변하는 세가의 마스코트가 소닉이고, 이게 북미에 어필한 세가의 브랜드 이미지였다.

소닉은 북미에서 공전의 대히트를 치고 마리오를 능가하는 캐릭터 인기를 구가.

소닉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져 히트를 쳤을 정도로 북미에서 소닉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아재들이라면 한번쯤 보셨으리라 믿는 소닉 애니메이션. 93년 북미에서 제작되어 대히트를 쳤고 이후 계속해서 TVA시리즈가 이어져서

1999년 소닉 언더그라운드, 2003, 2005년 소닉X 1.2기 그리고 2014년에 소닉붐 시리즈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북미를 대상으로 한 세가 아메리카 주도의 애니메이션이고 일본에서는 거의 잊혀진 캐릭터지만 북미에서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인기있다.

단적인 예로 세가에서 소닉게임 시리즈를 내면 일본에선 듣보잡 수준이지만 그 판매량 대부분이 북미에서 소화된다. 

마이클 카츠가 스타 마케팅으로 닌텐도에 냉소적이던 틴에이저들을 끌어들였다면 콜린스키는 소닉을 내세워 닌텐도 키드들마저 대거 흡수한다.

쉐어를 넓혀 전진기지를 만들고 그 기반으로 닌텐도의 쉐어에 침공해 마침내 닌텐도의 쉐어를 빼앗아 오는데 성공한 것이다.

세가의 오랜 열망이 마침내 북미에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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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본사와 싸우며 소닉에 목숨을 걸었던 콜린스키 사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콜린스키의 공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네시스의 입점에 회의적이던 북미의 유통마켓을 뚫어낸 것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북미지역 서드파티들을 세가로 돌아서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 유통마켓을 뚫기위해 콜린스키의 북미 세가는 별 미친짓도 서슴치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월마트 바로 옆에 매장을 차리고 시위를 한 일화를 들 수 있다.

유통을 뚫어내고 서드파티들을 확보하면서 제네시스는 그간 구축한 이미지와 마케팅으로 급성장을 하게된다. 그렇게 90년대 초반.

닌텐도의 슈퍼패미컴이 북미에 출시되었음에도 세가 제네시스는 북미에서 닌텐도를 밀어내고 연말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북미의 인기캐릭터 조사에서는 소닉이 마리오를 밟고 1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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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요 소닉!

바로 세가가 가정용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 이례 처음으로 맞는 리즈시절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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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이었던 세가 본사와 세가 아메리카도 이때만큼은이랬다

더 쓰려고 했는데 힘들어서 못쓰겠다.

망조가 들기 시작하는 1994년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에 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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