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세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알아보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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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어서 세번째 글이다. 이렇게 된거 그냥 하고싶은 대로 길게 써보기로 했다.

세가 이야기를 하면 늘 듣는 소리가 새턴 망했다라는 소리다.

일견 틀린말은 아니고, 실제로 북미에서는 빼박 망한 기기이긴 한데,

그래도 난 새턴이 망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중 하나.

새턴을 워낙 좋아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뭣보다도 새턴이 재껴버린 경쟁자들이 꽤 많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그렇지, 새턴 밑으로 망한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오늘은 샛길로 빠져서 잠깐 그 이야길 해보겠다.

32비트 세대의 경쟁자들.

세가와 닌텐도가 전부였던 16비트 게임기 시장에 비해 32비트 게임기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

난다 긴다하는 기업들의 각축전이었다. 이는 16비트 세대의 닌텐도와 세가가 북미에서 벌인 혈전의 영향이 크다.

이 싸움으로 시장이 대폭 성장했고 이제는 완구시 카테고리에서 완전히 독립된 콘솔시장으로 제대로 정립이 되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 으레그렇듯이 좀더 센놈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 좀 있지만 어떤식으로 끼어들어야 좋을지 모를 분들을 위한 안내서를 팔아먹는 놈들도 생긴다.

바로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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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O.  

억지를 좀 끼워 굳이 따지자면 사실 이 기기도 세가와 연관성이 좀 있다.

우선 이 3DO의 아이디어는 트립 호킨스라는 인물에게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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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ip Hawkins

본디 애플에서 근무하던 사람이다.

이 사람이 누군가하면 바로 EA의 사장으로 있던 사람으로 EA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있던 시기의 EA는 순수한 열정 그자체의 소규모 개발사로 단지 게임이 좋아서 만들고 있다는 분위기의 낭만적 개발사였다.

그런 분위기의 회사가 된건 사장인 트립 호킨스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사람은 사업가적인 냉철함이 부족한 로멘티스트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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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하던 시절의 EA.

일렉트로닉 아츠라는 사명은 호킨스가 직접 지은 것으로 게임 개발자를 아티스트로 대우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그런 회사다보니 소규모 개발사라도 양질의 게임을 낼 수 있었고 이게 세가에게 포착되어 폭풍성장의 기회를 얻는다.

그러던차에 세가가 북미시장 공략을 위해 파트너 업체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EA가 낙점받고

EA는 세가가 지원해준 자금으로 세가가 계약한 북미 스포츠 스타들의 게임을 만들어 대박을 내며 급성장하게 된다. 즉 돈이 생기게 된다.

트립 호킨스는 이 돈으로 출자를 해서 따로 3DO 컴퍼니를 설립하고 차세대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3DO 컴퍼니는 EA의 계열사로 출발했고 트립 호킨스는 ,EA와 3DO 양쪽의 경영을 맡고 있었다.

즉 3DO는 애초에 EA에서 탄생했고 이 탄생에 씨를 뿌린게 세가였다.

다 돌고 도는 인생아니겠는가.

3DO는 트립 호킨스의 게임사업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그는 EA를 이끌며 친 개발자적 경영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3DO 사업을 시작하게된 원인이자 사업의 정체성이기도 했고,

또 3DO사업이 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는 북미에서 닌텐도가 콘솔시장을 독점하고 서드파티들에게 부리는 횡포를 영세 개발사의 사장입장에서 보아온 사람이다.

닌텐도는 독점의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로열티를 챙기며 서드파티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트립 호킨스의 입장에서 이건 개발자에 대한 착취로 비추어졌고 이는 닌텐도 자체의 문제가 아닌 독점에 의한 문제라고 보았다.

트립 호킨스가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바로 VH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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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베타맥스가 VHS에게 진건 AV때문이라고 한다. 소니에서 베타맥스에 AV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시장 독점을 노린 소니 베타맥스가 성능적 우위에 있으면서도 VHS에 패배한 이유는 통제에 따른 다양성의 부족이었다고 생각한 트립 호킨스는

VHS의 사업방식이 게임시장의 독점을 막고 좀더 풍부한 컨텐츠를 양산해낼 토양을 만들어내며 개발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걸로 믿었다.

물론 게임기에 있어서도 VHS방식이 성공할 수 있을거라 내다봤다.

모두가 윈윈할수 있는 꿈의 게임기에 대한 낭만적인 도전의 시작이다.

초기 3DO의 라이센스는 예상외로 잘 팔려서 급성장한 가정용 콘솔시장에 흥미를 갖고 있던 많은 대기업들이 들어왔다.

대표적으로 파나소닉과 LG. 산요와 삼성도 라이센스를 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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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삼성은 라이센스만 사고 기기사업은 하지 않았다.  기기사업의 의도보단 LG를 견제하기위해서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대기업들이 투자를 하게 되자 서드파티도 몰려들었고 사업이 커지며

트립 호킨스는 EA 사장을 사임하고 3DO컴퍼니를 독립시켜 여기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한다.

모든게 다 좋아보였는데………

아시다시피 망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을 것이이지만, 그 중 가장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이유를 들자면 바로 이 사업자체를 구상한 트립 호킨스의 마인드였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그는 너무 개발자 친화적으로 사업자체를 구상했다. 이 사업에 접근하는 기업에 정서를 간과한게 결정적 패인이다.

무슨말이냐면.

3DO는 규격이 독점체제가 아니라 여러회사가 경쟁하는 구도이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는 서드파티들에게 로열티를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사업이다.

트립 호킨스도 이걸 원했던 것이고. 근데 이건 역으로 무슨 결과를 불러오냐면

콘솔을 내는 기업입장에서 수익성의 많은 부분을 콘솔판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사업 초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닌텐도, 소니, 세가가 줄줄히 써먹게 되는 게임업계의 교과서 적인 사업전략은

초기 손해를 보고 콘솔을 저렴하게 공급해 독점체제를 만든다음 소프트 로얄티로 손해본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근데 3DO는 그게 안된다. 한 기업의 시장 독점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트립 호킨스가 기대했던 것은 VHS처럼 각회사들이 가격경쟁을 통해 3DO의 단가가 낮아지는 것이었지만

이건 3DO가 거실 가전기기가 아닌 한정된 시장의 게임기라는 것을 간과한 기대였다.

애초에 시장의 규모가 넘사벽인 만큼. 게임콘솔 시장은 기기를 팔아서 수익을 내는 가전제품의 사업적 마인드로 진입하기엔 어려운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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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3DO는 비디오, 포토CD도 지원하는 종합 멀티미디어 기기라고 광고를 했지만 소비자들이 보기에는 그냥 게임기였을 뿐이고,

비디오 게임 콘솔시장이란 한정된 링안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기기였다.

결국 3DO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투자비용의 회수를 위해 어쩔수없기 기기단가를 높게 잡을 수 밖에 없었다.

3DO가 비쌌던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초기런칭에서의 애미없는 가격이 결국 3DO의 보급에 치명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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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3DO라고 하면 파나소닉 리얼이 대표적인데 출시가가 699달러라는 애미에비없는 가격이었다.

국내에서 발매된 LG의 기기는 그래도 좀 저렴했던 편.

가격에 이어서 3DO가 빠르게 패망하게 된 두번째 원인은 플렛폼 홀더의 부재다.

플렛폼 폴더는 자사의 게임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

닌텐도의 마리오, 세가의 소닉같은 것들이 바로 플렛폼 홀더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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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역시 이를 알고 SCE를 설립해서 플레이스테이션을 지원했다.

초기 그란투리스모같은 히트작이 여기서 나왔다.

자사의 기기에 서드파티를 모집하고 이끄는 것도 바로 플렛폼 홀더의 역할인데 소니가 이걸 잘해내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가가 오랜시간 서드파티가 없어도 버텨낸 것도 세가가 플렛폼 홀더로서 자사 게임기의 게임을 계속 만들어 공급했기 때문이고,

현재 닌텐도가 서드파티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가정용 콘솔을 꾸역꾸역 이끌어가는 것 역시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3DO는 구조상 이 플렛폼 홀더역할을 할 구심점이 마땅치 않았다.

처음 우후죽순으로 모여들었던 서드파티들이 한두번 간보다가 모두 떠나가는 와중에도 이들을 붙잡아두지 못했고 서드파티가 없어지자 바로 폭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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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3DO의 서드파티는 사상최대. 전세계 거의 모든 게임회사들이 관심을 보인 강력한 기종이었고, 그 퍼스트 파티가 바로 EA였다.

EA는 애시당초 3DO 컴퍼니의 모회사나 다름없었으니 3DO초기부터 총력적으로 3DO를 밀었는데 자사의 주력 스포츠 게임들을 다 3DO에 때려박았다.

이때문에 세가와 트러블이 생기고 새턴으로 EA게임이 단종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는 북미시장에서 새턴이 폭망한 한가지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3DO가 주춤하자 우글거리던 서드파티들이 거짓말같이 하루아침에 다 이탈해버리고 여기에 EA도 함께 이탈. 소니진영으로 넘어간다.

이때 트립 호킨스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고  EA가 더이상 과거 자신이 이끌던 그런 순수한 크리에이터 집단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이 이외에도 패인은 많이 있다. 성능적 문제, 참여한 기업들의 게임산업에 대한 몰이해…….기타등등 많지만

역시 초기 말도 안되는 가격책정이 3DO의 운명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타격이 컸다.

3DO가 여러 대기업들을 잡아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혼자 손해본건 아니니 호구라고는 해도 외롭지 않다.

그리고 제아무리 망했다지만 전세계 200만대는 팔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작 게임 소프트도 몇 있으니 아직도 3DO를 추억하는 유저들도 함께 존재한다.

본인역시 그 중 하나로 3DO는 본인에게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는 게임기다.

아타리 재규어처럼 잊혀졌다가 훗날 재발굴되어 망가진 케이스도 있지만

이건 또 제대로 병신소리 들으며 32비트 게임기의 최강병신, 병신의 아이콘이라는 예능적 스탠스로

현재에 와서도 게임에 좀 관심이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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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GN동영상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2000년 중반만해도 이거 아는 사람 별로 없었는데.

어쨌든 역사에 이름은 남겼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망해도 제대로 망하면 유명해진다는 법칙의 표본이다.

재규어 같은거야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거 같고

뭣보다도 내가 알기로 재규어 이야기는 암만써봐야 세가 이야기를 못끼워 넣으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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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일부 들어와서 백화점등지에서 시연되기도 했으니 실물을 본 아재도 의외로 많을거다.

본인역시 백화점에서 직접 패드를 잡고 플레이해본 아재들 중 하나.

그런의미에서 세가가 까메오로 출연하게 되는 다음이야기의 주인공은 뭐냐면,

망함의 끝판왕. 망함계의 메시라고 할 수 있는 존재다.

사실 3DO나 재규어나 망했다들 까대며 비웃는데 정말 망하면 존재 자체가 잊혀진다.

까대면서 비웃을수 있다는게 이미 적당히 망했다는 증거다.

이걸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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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피핀.

내 장담하는데 이걸 실물로 본 사람은 업계관계자가 아닌 이상 이나라에 없다. 일명 환상의 게임기.

여기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반다이를 언급하지 않을수가 없다.

반다이는 모두가 아시는 거처럼 유서깊은 완구업체이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큰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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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건담, 세일러 문같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은 다 반다이가 판권을 가지고 있고

특히나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모든 로봇애니는 반다이로 통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점부터 말하면 반다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정용 콘솔사업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부터냐면 패미컴이 나오기 이전시절부터다.

북미에서 인텔리비젼을 수입 유통하기도 하고, 70년대 말 잠시 유행하던 가정용 내장 게임기를 팔아먹기도 했고.

더 나아가서는 왕년에 패미컴하고 한판 붙어봤던 회사이기도 하다.

이걸로

패미컴과 같은 시기 나왔던 반다이제 게임기. 사실 패미컴 초창기 시절엔 반다이 뿐 아니라 일본내 별별 회사에서 다 게임기를 냈다.

83년에서 85년사이 일본내에 나온 가정용 콘솔기종은 대략 15종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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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슷한 시기 출시한 가정용 컴퓨터…..를 빙자한 게임기. 기기명부터 반다이 스럽게 RX-78

 

이런식으로어떡하든 가정용 콘솔시장에 진입해보려고 기를 쓰던 회사였는데

패미컴이 너무 강하다보니 결국 꼬리말고 본업으로 돌아갔다. 그게 80년대 초중반.

이후 반다이는 가정용 콘솔에  C급 캐릭터 게임을 줄기차게 찍어내는 걸로 유저들에게 악명을 쌓아올리며 한 10년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

90년대 중반 폭풍성장한 콘솔시장은 더 이상 닌텐도가 독점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 열린 듯 보였다.

대기업들이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소니가 독자적 콘솔사업 진출을 선언하더니  3DO를 통해 거대 가전업체들이 무더기로 시장에 진입해오기 시작했다. 닌

텐도 10년 독재체제가 종말을 고하는 듯 보였다. 10년간 장기독재하의 평온이 깨질 기미가 보인 것이다.

이는 콘솔시장에 혼돈의 전국시대가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안개속에 있었다.

이 말은 반다이에게도 다시한번 콘솔사업에 진입할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반다이는 사운을 걸고 사업을 크게 벌이기로 한다.

반다이의 콘솔사업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NEC의 성공에 착안을 한 것으로 NEC가 형성했던 시장의 가능성을 봤다.

CD-ROM이란 매체의 등장과 더불어 NEC와 세가가 CD-ROM으로 하는 짓을 보고, 또 그걸로 시장을 형성해내는 걸 목격하며 나름 영감을 얻는다.

게다가반다이는 익히 오래전부터 PC엔진 게임에도 참여를 했었고 이는 반다이가 가진 자산, 즉 애니메이션에 대한 것이었다.

PC엔진으로 돌릴 드래곤볼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며 반다이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게임기를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 더 좋잖아? 우리 자산을 활용한 우리의 게임기를 만들면 일석이조 아닌가.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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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이 플레이디아. 94년 발매.

그냥 만들어본게 아니다. 진지하게 만들었다. CM도 마구 때려대며 밀었던 기기다.

 

플레이디아는 말그대로 애니메이션을 돌리기위해 만들어진 기기다.

애니메이션에 약간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만든 구태연한 인터렉티브 무비가 이 게임기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과거 PC엔진과 메가CD와는 뭐가 다르냐하면 애니메이션의 퀄리티가 남달랐다.

그거말고는 없는 기기.

이런 타입의 게임이 그래도 PC엔진 시절 나름 시장을 형성했던 적이 있으니 잘하면 포스트 PC엔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반다이는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몇가지 문제로 실패했다.

첫째는 트랜드를 잘못읽었다는 것. PC엔진의 유저층은 미소녀 + 게임을 좋아했던 것이지 단순히 애니메이션이 돌아간다고 좋아했던건 아니고,

PC엔진 자체가 그당시 워낙 고가였기 때문에 이 팬층은 연령대가 높다. 반다이 애니메이션 보다는 좀더 성인물지향의 자극적인게 트랜드다.

둘째는 이제 CD-ROM은 개나소나 장착한 게임업계의 표준이 되어 그 시절 PC엔진이 가지던 희소성이 사라졌다는 것.

저PC엔진의 팬층은 이미 다른 32비트 기기들로 흡수됐다. 더 이상 PC엔진이 가지던 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것. 플레이디아로 애니메이션 인터렉티브 게임을 낼 수 있는 회사는 반다이 밖에 없었다.

사실 이게 반다이 자체적인 기술의 한계였을 것이다.

반다이 역시 3DO에 뛰어든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콘솔사업에 진입하고 싶은데 돈만 있고 기술적 밑천이 없는 회사였다.
이게 충동적이었는지, 계획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다이는 플레이디아와 거의 동시에 다른 게임 콘솔을 준비했다.

플레이디아로는 오덕층, 저연령층을 노리고 진짜 32비트 콘솔시장의 헤비유저를 노릴 다른 콘솔도 만들자. 라고 계획한 듯 보이는데

아시다시피 반다이는 그럴 기술력이 없다.

그럼에도 왜 다른 대기업들처럼 당시 게임업계 초보자들의 아이콘이었던 3DO에 뛰어들지 않았냐면 더 좋은 걸 캐치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바로 애플이 개발하고 있던 신형 멀티미디어 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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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바로 여기 말이다.

아시다시피 80년대 후반들어 애플은 IBM PC에게 완전히 밀리며 90년대초에는 컴퓨터 시장에서 완전히 코너에 몰려있었다.

이 시기 CD-ROM 매체가 급부상하며 이 매체를 이용한 멀티미디어 기기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데 필립스가 내놓은 필립스 CD-I처럼,

애플도 이런 멀티미디어 기기를 통한 활로를 모색해보기로 한다. 그렇게 내놓은 기기가 바로 피핀.

필립스 CD-I처럼 멀티미디어 기기를 표방하고 나와 필립스와 마찬가지로 OEM방식의 사업을 구상했다.

피핀은 자사의 매킨토시CPU를 때려박은 기기로 모뎀을 장착한 최초의 콘솔기기이며, 웹브라우징도 가능했다.

4배속 CD-ROM드라이브에 맥킨토시 그 자체인 만큼 맥킨토시와 호환도 가능. 게임기적인 측면에서도 준수한 능력을 지닌 범용성 콘솔이었다.

애플은 이 기기를 90년대초부터 홍보했고 몇몇 기업들이 여기 관심을 보였는데 최종적으로는 3개 기업이 라이센스를 샀다고 알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놀랍게도 삼성인데 3DO라이센스도 사놓고 이것도 사놓고 이것저것 사놓은걸로 봐서 정말 90년대에 삼성이 콘솔사업을 해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물론 삼성은 3DO와 마찬가지로 간을 보다가 발을 뺐고,

애플 피핀에 가장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실재로 유일하게 애플 피핀을 생산하게 된건 다름아닌 반다이였다.

컴퓨터 업계의 거장과 완구업계의 거장이 손을 잡는 뭔가 드림팀같은 필이 풍기기도 하는데

일본명은 피핀 앳 마크.

일단 문제는 이 애플 피핀을 만든 당사자인 애플이 이 기기에 그다지 열정적이지가 않았다는 것인데,

 라이센스만 팔아놓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식이어서 결국 모든건 반다이가 다 해야했다.

반다이는 1억 달러를 들여서 생산 공장을 짓고 혼자서 홍보하고 혼자서 서드파티를 모집하고 혼자서 게임을 내야 했다.

이러다보니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피핀은 95년 32비트 게임기로는 가장 늦게 출시가 된다.

이 시기엔 이미 일본내에서 플레이스테이션과 새턴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었고

북미에선 재규어, 3DO, 32X, 좆밥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와중에 플레이스테이션, 새턴이 막 등장하며 혼돈의 카오스가 되어있었다.

당연히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고 관심을 끌기도 어려웠으며 모든 것을 게임사업에 문외한인 반다이가 주도하다보니 엉망 그자체로 런칭되고 만다.

일단 서드파티 모집에 실패해서 피핀으로 참여한 서드파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덕분에 피핀으로 발매된 게임은 대략 20종인데 이것도 거의 전부가 반다이 자체제작 게임이다.

반다이란 회사는 80년대부터 쿠소게임 전문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반다이가 게임개발사가 아니므로 외주를 줘서 만들기 때문.

반다이와 연결되는 외주업체들은 본래 반다이의 특성상 캐릭터 게임을 빨리 찍어내기 위해 고용되는 업체다보니 여기에 특화된 B급 게임 전문 업체들이다.

이런 개발사들이 만드는 게임은 당연히 피핀의 성능에 반에 반도 못쓰는 게임들이었고

결국 피핀은 얼마있지도 않은 게임들마저 이런 쌈마이 게임들로 채워졌다.

피핀 게임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다이도 큰 욕심은 버리고 본전이라도 회수하길 바라는 마음에 연내 20만대를 목표로 세웠지만 판매량은 그해 공식집계조차 안됐다.

반다이에서 찍어낸 피핀은 10만대인데 피핀은 다음해에 철수했고 토탈적으로 판 피핀은 4만대 정도라고 알려져있다.

그리고 반다이가 이렇게 될 동안 애플은 팔짱끼고 구경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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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옛날에도 호구였고 지금도 호구고 내가 시발 국가대표 호구다

세가는 도대체 언제나오냐 궁금해 하실 분들이 계실텐데 지금 나온다.

뭔가 굉장히 초라하고 성의없어보이는 콘솔사업 같아보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반다이는 이 콘솔사업에 사운을 걸었던 것이었다.

콘솔사업에 경험이 없다보니 노력에 비해 뭔가 허접해 보이는 것 뿐.

그 증거로 반다이는 이 사업 때문에 회사 존폐위기에 몰린다.

엄청난 적자를 감당못하고 결국 회사의 합병이야기가 나왔고 여기서 세가가 끼어들어 세가 반다이의 합병이 가시화된다.

실제로 성사단계까지 갔고 연일 언론에 확정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90년대 국내 게임잡지를 뒤적이던 아재들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세가 반다이 합병은 기정 사실이었다.

다만 반다이 사내에서 세가와의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아 이를 조정하느라 좀 늦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서 반다이는 구원받고 세가와의 합병을 전면 취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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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역사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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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고치. 90년대 중반 일본내 사회현상으로 까지 번져나간 휴대용 게임기기. 일본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히트했고

국내에서도 이슈였다. 아무 생각없이 만든 기기가 이따금 잭팟을 터트리기도 하는게 완구시장.

이 밖에도 PC-FX란게 있는데, 이걸 잠깐 설명하자면 이전에 썼던 PC엔진의 후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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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아니다. 게임기다.

NEC에서 낸 32비트 기기로 이 콘솔의 특징은 앞서 보신 반다이 플레이디아와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망한이유역시 플레이디아와 거의 같다.

망하는 콘솔들의 특징이 그렇듯이 이 기기역시 서드파티 유치를 못하고 NEC 스스로 게임을 제작해가며 버티다가 망했는데 의외로 오래 버텨서 좀 유명하다.

거의 32비트 시장의 끝물인 98년까지 게임이 나왔다. 이렇게 말하면 게임이 많이 나온 기기같아 보이는데

막판에 가면 1년에 게임이 두세개씩 나오던 기종으로 나온게임 다 합쳐봐야 60개정도밖에 안된다.

특이하게도 이 게임들 거의전부가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미소녀게임. PC엔진 시절의 컨셉을 일관성있게 마지막까지 고수한 남자다움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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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남자다움 하나만으로 승부했던 게임기.

덧붙여 32비트 기기임에도 3D기능은 전무하다.

처음부터 3D그래픽을 포기한 기기는 아니고 3D폴리곤 연산칩이 설계상에는 들어가 있었는데 이 칩의 개발이 늦어져서 그냥 내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쓸데없이 커다란 본체와 맞물려 일본내에서는 게임기를 세우고 눕힐수 있는 최초의 물리적 3D 게임기라고 놀림거리가 된다.

세가는 언제나오냐면 지금 나온다.

NEC가 게임콘솔시장에서 버티던건 그만큼 콘솔시장에 대한 참여의지가 강했기 때문인데, 결국 PC-FX가 실패한 이후에는 스탠스를 바꿔 협력업체로 돌아선다.

바로 세가의 드림캐스트가 이 NEC의 작품이다. 여기에 대해선 차후 드림캐스트를 다룰 때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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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NEC와 세가의 합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세가하곤 연관이 없긴하지만 이런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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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에서 만든 루피. 32비트 콘솔로 분류된다.

망한걸로 따지면 이것도 망함계의 호날두 정도는 되는데

피핀처럼 스케일 크게 망한 것도 아니고 재규어처럼 병신력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라 따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

32비트 기기이기는 한데 정면에서 콘솔시장을 노린 기기는 아니고 타겟을 분명하게 한정한 기기다. 유아용, 정확히는 여아들에게 어필한 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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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초딩들의 로망이었던 카시오의 게임시계.

카시오는 80년대 초부터 알게모르게 게임업계를 기웃거린 기업으로 딱히 콘솔을 낸게 뜬금없지는 않다.

닌텐도 초창기 시절에 이미한번 게임콘솔도 내봤던 기업.

카시오까지 참전했을 정도니 32비트 게임시장이 얼마나 혼돈의 카오스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상이다.

다음편에는 다시 세가 이야기를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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