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 세가의 흥망성쇠에 대해 알아보자 2

일전에 북미시장에서 세가가 닌텐도를 추월해 시장1위를 달성하기까지의 내용을 다뤘는데,

그 1위라는게 사실 오래가지 못했다.

1991년 닌텐도가 북미시장에 슈퍼패미컴 북미명 슈퍼 닌텐도를 출시하면서 점차 밀리게 되고 결국 1위자리를 다시 내주게 되지.

그래도 제네시스는 슈퍼닌텐도와 박빙에 승부를 몇 년에 걸쳐서 펼치게 되는데

사실 제네시스는 성능적으로 슈퍼 닌텐도에 상대가 못됐고 이는 초딩이 봐도 한눈에 알수 있을정도의 차이였다.

그럼에도 제네시스가 선전한건 전적으로 세가 아메리카의 마케팅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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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연산 능력!”

북미에서 슈퍼닌텐도의 발매후 세가 아메리카의 마케팅은 가히 신이 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여기에 대해서는 AVGN의 영상 어딘가에 보면 잘 나와있다. 관심있는 게이는 한번 찾아봐도 좋을거다.

여하튼  이제부터는 제네시스의 북미 성공이후, 1994년 세가가 새턴을 발매하기 이전까지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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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세가타워 히스토리. 

1991 메가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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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CD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메가드라이브에 CD ROM을 장착시키는 에드온.

좆망기기로 익히 알려져 있고 실제로 그렇기는한데 이 에드온기기가 단순히 세가의 병신짓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여러 사정들이 좀 있다.

세가도 일단 회사인데 경영적 판단하에서 일을 벌인다. 세상에 핑계없는 무덤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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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도 회사야 회사!

먼저 이 메가시디가 북미시장의 제네시스 쉐어를 유지하기위한 사업이었다고 아는 분들도 있던데 정황을 따져보면 전혀 틀린말이다.

일본 본사의 메가시디의 개발소식을 접한 세가 아메리카에서 이 기기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세가 본사는 모두 씹어버리고 니들이 상관할거 없다며 북미쪽에 일체 메가시디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아 세가 아메리카를 공분시킨 일화만 봐도

애초에 이 기기는 북미 시장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세가 아메리카에서는 메가시디에 대해서 차세대기를 대비한 기술쌓기 정도로 여겼다고 하는데

물론 그런 의미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런 목적만으로 이런 큰 사업을 벌일리야 없고.

단적으로 말해서 메가시디는 일본시장을 겨냥하고 나왔다.

그럼 메가시디는 왜 일본내수 시장을 위한 기기였나 살펴보면 당시 정황이 이랬다.

메가 드라이브가 일본에 발매되었을 80년대 말.

일본 가정용 게임시장은 패미컴이 장악하고 있었고 그 이전까지 가정용 게임기로 경합해보려던 많은 회사들은 그 시점에서 다 떨어져 나간상태였다.

남은 회사라고는 세가, 그리고 NE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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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다 아실 굴지의 일본 컴퓨터 메이커. 게임회사가 아니다.

세가가 닌텐도에 이어 2위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이 시기 세가는 일본내 3위였고 2위는 바로 저 NEC가 차지하고 있던 실정.

뭐 닌텐도가 다 쓸어담았으니 그 밑에 2.3등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전체시장을 보자면 닌텐도가 70. NES가 20 세가가 10정도 비율을 차지했다고 본다.

사실 이런 상황은 NEC가 시장참여를 한 초기엔 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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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NEC에서 발매된 PC엔진

 바로 다음년도에 16비트 게임기 메가 드라이브가 나오니 상당히 늦게 나온 8비트 기기인데

그래픽 칩이 16비트라 그래픽면에서는 패미컴을 압도했다…..지만

성능상 문제점으로 액션게임에 취약. 장단점이 극명한 게임기였다.

당시 게임업체였던 허드슨이 충동질해서 허드슨과 합작으로 개발되었다고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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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자인 익숙하신 분도 계실텐데 이것도 PC엔진의 기종중에하나인 PC엔진 셔틀.

대우전자에서 라이센스를사서  재믹스의 후계기로 국내 발매했던 기종이다. 

 

세가야 원래 게임회사라지만 이 NEC는 게임회사도 아니었고 게임기가 본업도 아니었으니 응당 곧 철수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NEC는 철수하지 않고 버텨냈는데 이 놀라운 기적을 이룬 핵심이 바로 88년 발매한 CD-ROM 에드온 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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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엔진 런칭 1년만에 발매한 CD-ROM 에드온 기기. CD-RO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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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는 일체형인 PC 엔진 듀오가 주력이 되며 PC엔진은 그냥 CD-ROM 게임기로 굳어진다.

초기에는 기기 메모리 부족으로 CD의 고용량을 활용 못했지만 계속해서 버젼업을 하며 문제를 해결했고

아케이드 카드라는 것도 도입해 SNK의 격투게임들을 완벽에 가깝게 이식해내는 짓도 했다. 

 

아마 전세계 최초 CD콘솔기기였지 싶은데 아무래도 NEC가 컴퓨터 업체이다보니

당시 PC업계에서 떠오르던 CD-ROM을 가장먼저 게임 콘솔시장에 적용해 볼 수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이 당시 게임업계는 CD-ROM에 의해 황당할 정도로 늘어난 용량을 게임적으로 쓸 기술력이 없었던 고로

게임자체는 8비트 그대로였고 1배속의 느려터진 로딩에 그닥 잘난점은 없었음에도

이 피시엔진은 닌텐도 왕국 한 구석에 자기만에 견고한 탑을 쌓고 자리잡는데 성공한다.

이유는 바로 고용량을 활용한 비쥬얼 영상과 음향.

특히 미소녀 게임이 그 비쥬얼과 음성더빙으로 각광받아 소위 오덕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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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TEND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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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스테이션, 세가새턴, 슈퍼패미컴, 심지어 게임보이로까지 이식된 시대의 히트작 도키메키 메모리얼도 원조는 PC엔진이다.

세가는 여기에 주목했다.

거의 퇴출 분위기였던 메가드라이브를 어떻게 하든 회생시키기려면 닌텐도 보단 NEC의 쉐어를 가져오는게 더 쉬울거 같았으니까.

세가는 일본내 시장에서 NEC가 보유하고 있는 시장을 흡수하고 쉐어를 넓혀볼 계획을 세운다.

한마디로 메가CD는 인천상륙작전 같은 의미의 사업이었다.

더불어 경쟁기인 슈퍼패미컴은 메가드라이브를 거의 모든 스팩에서 아득히 앞서고 있었고

일본내에서 메가드라이브를 유지시키자면 메가드라이브의 성능적인 업그레이드도 고려를 해야 했을 것이다.

단지 망했다는 결과론적인 이유만으로 많은 분들이 메가CD를 세가의 뻘짓, 판단미스라고들 폄하하지만,

이미 88년도 NEC가 CD ROM에드온 기기를 냈을 동시기에 닌텐도 역시 소니와 CD ROM에드온 기기 개발계획을 채결한 상태였다.

업계 1.2위가 모두 CD-ROM을 이용한 기기를 준비하는 와중에 세가가 여기 참여하지 않는게 더 이상한 일이다.

일본시장의 정황상 CD-ROM에드온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여하튼 그렇게 기획된 것이 메가시디인데, 사실 이건 소니와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대해서는 후술하겠지만 정황상 소니에서 세가에 CD-ROM 에드온기기를 만들라고 충동질 했을 공산이 크다.

어쨌든간에 이렇게해서 나온 메가CD는 여러분 모두가 아시는바와 같이.

망했어요

메가CD의 일차적 목적은 NEC가 점거하고 있는 일본내 쉐어의 흡수였다.

그러려면 당연히 피시엔진보다 성능이 월등해야 한다.

메가CD는 정지화상을 이어붙인 비주얼이 한계였던 피시엔진을 가볍게 압살하는 동영상 재생능력, 그리고 자체CPU를 탑제, 강화된 비쥬얼능력이 동반되어

사실상 메가드라이브를 16비트는 능가하고 32비트에 못미치는 낀세대 게임기로 만들어주는 에드온이었다.

메가CD게임Time Gal  당시 PC엔진으로는 꿈도 못꾸던 이런 풀모션 동영상이 가능

이 당시 메가CD는 세가 최강의 동영상 재생능력을 갖춘 게임기기였다……..라고 해봤자 경쟁자는 PC엔진 하나.

잘만된다면 꽤 괜찮은 성과를 올릴법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일본에선 실패했다.

가장 큰이유는 49800엔이라는 에미없는 가격. 거기에 메가드라이브 에드온이니 메가드라이브 본체가격까지 더하면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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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엔진 듀오와 마찬가지로 세가도 일체형인 원더메가를 출시.

가격은 무려 8만엔선. 에미디지다 못해 에비까지 디져버린 놀라운 가격. 

이 메가CD의 주적인 PC엔진은 이미 88년 이래로 꾸준하게 마이너 업그레이드를 해오며 기기의 가격단가가 낮아진 상태로

이미 가격면에서는 메가CD의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나중에서야 2만엔대로 코스트를 낮추는데 성공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던 상태였고.

두 번째로는 런칭타이틀이 빈약했다는 것. 일본내에서 서드파티들에게 왕따수준이었던 세가는 메가시디 발매에 맞추어 타이틀을 갖출수가 없었다.

게다가 메가시디 자체가 워낙에 빠르게 개발한 기기이다보니 서드파티들에게 개발킷등의 지원을 제대로 못해서 폭망.

단 두개 소프트로 런칭했는데 이 게임들이 그냥 메가드라이브 판 게임을 그대로 급조해 내놓은 꼴이어서

그냥 좆도 비싸고 덩치만 산만한 메가드라이브 음향기기(게임자체는 메가드라이브 게임인데 음악은 시디음질)라는 엄청난 첫인상을 일본내에 선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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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딴 게임이 5만엔짜리 게임기의 런칭작

애초에 일본내에 메가드라이브가 깔리지를 않았으니 에드온 기기로서도 판매가 저조하고 첫인상부터 쉣이 되어버려 관심도 싸늘해져 버렸다.

뒤늦게야 이런저런 동영상을 이용한 게임들과 슈퍼패미컴을 능가하는 2D게임 이식작들이 나왔지만 상황반전에는 실패.

그래도 메가 드라이브가 90년대 초중반들어 일본내에서 좀 팔려나가고

루나 시리즈같은 명작들이 입소문을 좀 타면서 90년대 중반까지 일본내에서 대략 40만대 팔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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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시리즈. 메가CD의 명작중 하나로 그 인기에 힘입어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으로 이식된다.

일본 런칭 폭망후에야 북미에서도 세가CD라는 명칭으로 출시.

북미에서는 대략 300에서 400만대 사이 정도가 팔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북미에 깔려있는 제네시스의 숫자에 비하면 딱히 성공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그래도 나름 유행을 탔고 아주 죽을 쑨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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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서 인기를 얻었던 세가CD의 런칭작 나이트 트랩과 수어 샤크.

당시 북미 비디오 게임 유저들에게 생소했던 풀 모션 비디오를 이용한 게임이 유행을 타며 나름 선전했지만

말그대로 유행이었을 뿐 금새 인기는 사그라든다.

닌텐도의 영향력 밖에 있는 땅을 먹어보겠다는 시도. 그리고 기기자체의 성능.

다 좋았는데 사업적 접근이 나빴다고 평할 수 있겠다.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꼭 성공시키겠다는 세가 본사의 의지가 박약했고 준비성도 부족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이 메가CD의 존재는 훗날의 플레이스테이션이 고성능으로 완성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여기에 대해선 차후에 설명을 하고,

결론은.

다 좋았다. 좋았는데 안했더라면 더더욱 좋았을 것이다.

전쟁의 서막 1992

세가 아메리카에서 추측한대로 메가CD가 사실 세가 차세대기의 발판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가는 메가CD의 노하우를 바탕으로차세대기 기획을 92년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세가는 차후 드림캐스트의 개발때도 그랬지만 개발팀을 둘로 나누어 각각의 컨셉트를 부여해 다른 두가지의 기기를 준비하는데,

이게 발전해서 나중에는 소위 말하는 플레닛 프로젝트가 된다.

간단히 말하면 한쪽은 메가CD처럼 CD-ROM을 매체로 한 32비트 CPU탑제 차세대기.

그리고 한편은 기존의 카트리지 방식을 고수한 32비트 기기다.

물론 공통된 사안으로는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호환성이 우선시 되었다.

이전부터 누누이 말하지만 세가는 본업이 아케이드 업체고 아케이드 게임이 정체성이고,

또 그에 대한 프라이드가 남다른 회사다. 그리고 세가 아케이드 게임은 명실공히 세계최강급의 개발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

닌텐도가 마리오, 젤다, 카비같은 자사의 캐릭터 게임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다면 세가는 바로 아케이드 인기작이 자산이었다.

메가드라이브도 애초에 그런 아케이드 게임을 밑천삼아 제작된 기기였고,

이게 안먹히는 와중에 북미에서 양키성님들 마케팅에 힘입어 대박을 쳤다지만 세가 본사는 북미1위를 했든 어쨌든.

그 사실을 달가워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세가의 아케이드 부심은 거의 병이라고 봐도 된다.

세가 본사는 이번 차세대 게임기도 메가드라이브의 컨셉트 그대로 기획했다.

메가드라이브가 아케이드 이식을 제1순위로 놓고 세가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16을 때려박아넣은 기기였던 것처럼,

새로운 차세대기는 바로 세가의 최신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 32를 때려박아 넣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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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답변을 해드리자면 이 시스템32는 3D그래픽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기판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수퍼패미컴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즉 2D에서 3D게임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된 것 같지만

이 시기, 그러니까 슈퍼패미컴과 메가드라이브가 각각 일본과 북미에서 득세하고 있던 92년도에는 3D 게임에 대한 전망자체가 없었다.

세가가 차세대기로 체택한 시스템32는 아케이드에서 슈퍼패미컴을 월등히 능가하는 2D성능을 보여주는 기판이었고

92년 당시에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세가는 이걸 기반으로 시디를 대응매체 삼아 풀동영상과 음향을 추가해 32비트 CPU의 차세대기를 만들려고 했다.

이게 세가 게임기 사업부의 기획이었는데……..

아케이드 사업부는 따로놀고 있었다는게 문제다.

스즈키 유를 주축으로 한 아케이드 사업부 AM2는 이미 모델1이라는 기판을 따로 만들어 이 기판을 이용한 아케이드 게임을 기획중이었다.

조짐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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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스즈키 유는 버철 파이터 기획안을 가지고 경영진과 협상중에 있었다.

이 무렵 세가 아메리카에선 어떤일이 있었냐면

소니의 쿠타라기 켄이 세가 아메리가 사장인 칼린스키와 의논을 하고 있었다.

왜 소니가 세가 아메리카에 찾아갔는지를 설명하자면 일단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봐야 한다.

다 아시는 이야기라 노잼, 지겹다 소리 나올 것 같지만 이걸 안쓰면 진행이 안되니 양해 부탁드린다.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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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가 80년대 컴퓨터 사업을 하며 함께 설립한 소프트 웨어 회사인 소니 이미지 소프트.

패미컴 부터 시작해서 80.90년대 모든 콘솔에 B급게임을 싸지르고 다니던 괴팍한 회사였다.

소니가 80년대초부터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어 게임업계를 도둑고양이처럼 기웃거렸던 건 다 알려진 사실.

근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소니가 게임업계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쿠타라기 켄이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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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타라기 켄

아는 분은 다 아는 유명인. 플레이스테이션 그 자체인 사람.

현재에 와서는 빅마우스. 언플러로 악평이지만

사실은 천재적인 엔지니어로 일찌감치 소니내에서 명상을 쌓았다.

초기 플레이스테이션도 이사람이 직접 설계. 

그는 이미 80년대 닌텐도의 성공을 보고 소니가 게임업계에 진출해야한다고 믿게된 사람으로

80년대 후반부터 게임업계에 줄기차게 기웃거리는 걸로 악명높은 인물이었다.

슈퍼패미컴에 사운드 칩을 소니가 납품하게 만든 것도 이 사람 짓인데,

사실 이건 소니 본사와 전혀 상관없는 쿠타라기 켄의 독자적 행동이었다.

이 때문에 한때 소니에서 짤릴 뻔하기도 했다가 슈퍼패미컴이 대박을 치면서 소니의 수익과 명성이 올라가 극적으로 사면받았다는 전설같은 일화도 있다.

소니의 쿠타라기 켄은 닌텐도에 사운드 칩을 납품하며 닌텐도와 인맥을 만들었고

닌텐도는 쿠타라기 켄을 대단히 호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이점을 이용해 그는 닌텐도에게 시디롬 에드온 기기를 제안하게 된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닌텐도 시디 에드온이 기획된건 세가보다 먼저였다.

88년 쿠타라기가 닌텐도에 사운드 칩을 납품하면서 동시에 진행된 일이고 이때 이미 계약을 성사시켰다. 일명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다.

여기에도 나름 역사가 있는데,

일단 이 시점부터 필립스가 연관되어 있었고

닌텐도는 소니와 필립스를 저울질하다 위에 언급대로 쿠타라기 켄에게 넘어가 소니를 파트너로 낙점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여기서 소니가 요구한 CD-ROM의 로열티 문제가 닌텐도의 심기를 건드려 닌텐도는 다시 계약을 파기,

필립스를 끌어들여 프로젝트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소니는 이시기에 세가로 건너가 메가CD를 만드는데 협력했다.

이 정황을 보건데 아무래도 세가의 메가CD는 소니에서 세가를 충동질해 출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튼 이때 소니가 세가에 협력해 메가CD를 개발한 기술적 노하우를 높게 샀던 것인지 닌텐도는 다시 소니를 불러들여 새로 계약을 맺는데

일전에 소니와 마찰을 빚었던 CD-ROM의 로열티 문제는 닌텐도가 독자규격의 닌텐도 디스크를 채택하기로 하면서 일단락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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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닌텐도의 독자 디스크는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시절의 그 디스크……..는 물론 아니고 그렇게 생겨먹은 규격.

정확한 계약내용은 알수없지만 훗날 소니와 세가의 협의사항을 보고 유추하건데

슈퍼패미컴 에드온기기는 닌텐도 디스크와 CD-ROM 두 매체를 호환하는 기기였지 않을까 싶다.

닌텐도 디스크로 나오는 게임의 로얄티는 닌텐도가 가지고, CD-ROM으로 나오는 게임의 로열티는 소니가 가져간다.

대충 이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닌텐도는 어차피 자사의 게임이 가지는 영향력과 닌텐도의 시장지배력을 믿고 있었을테고,

소니는 차기적으로 CD-ROM이 전세계적 게임업계의 표준이 될 때를 대비한 큰 그림을 그렸을거다.

여하튼 새롭게 계약을 맺은 소니의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미 88년도에 나온 프로트 타입을발전시키는데,

특히 메가CD 개발에 참여했던 소니는 뒤늦게 나오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메가CD의 성능보다는 월등히 높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이 에드온기기의 성능을 높이는데 주력하며 발매가 늦어지게 된다.

이게 훗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시대를 앞서간 고성능이 된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메가CD가 발매된 91년에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은 프로트 타입이 완성되었지만 발매는 아직 미정으로

소니는 연내발매는 어렵고 늦는만큼 좀더 고성능이 될 것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그 해6월 컨벤션에서 이 프로트 타입이 일단 공개될 예정으로 잡혀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던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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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게 어떤 디자인으로 나올지 당시 이런저런 추측이 나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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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렇게 생겨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 아시다시피 공개 1주일을 앞두고 닌텐도에서 돌연 계약파기를 해버리고 만다.

닌텐도는 소니의 CD-ROM 에드온은 전면취소 하고 필립스와 계약된 CD-I 공동 플렛폼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 발표해서 소니를 제대로 엿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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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닌텐도는 에드온을 포기하고 필립스는 독자적으로 CD-I 규격의 기기를 만들었다. 이른바 필립스 CD-I

닌텐도와의 계약에 따라 닌텐도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도 만들수 있었고 실제로 만들기도 했는데 

사실 이 기기는 게임기라기 보다는 종합 멀티미디어에 중점을 둔 기기로 실제 게임도 거의 없다.

OEM방식으로 여러업체들이 생산해서 디자인이 제각각인데 잘들 모르시지만 LG에서도 이걸 생산해 판매했다.

전세계적으로 50만대 정도팔린 망작이고 LG의 국내판매량 대부분은 정부지원으로 각급 학교에 공급된게 고작.

필립스가 이거때문에 타격이 꽤 컸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닌텐도는 에드온 기기에 대해 소니가 닌텐도 독자 규격의 디스크를 수용하며 물러서자 이에 대해 만족하는 모양새였고

소니도 이런 닌텐도가 설마하니 느닷없이 마음을 바꿀줄은 상상도 못했던 터였다.

물론 이건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가 갑자기 변덕을 부린 탓인데,

소니에 호의적이던 야마우치 사장이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꾼이유는 바로 이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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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카와 미노루

이 무렵. 닌텐도 아메리카의 사장이자 닌텐도 야마우치 회장의 사위였던 사람.

닌텐도를 북미시장에서 성공시킨 당사자로 야마우치 사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아라카와 사장이 지속적으로 야마우치 회장을 설득한 것은 바로 소니와의 계약파기였다.

미국에 있으면서 세계 게임업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CD-ROM이 머지않아 비디오 게임의 주력 매체가 될것으로 내다보고 있었고

야마우치 사장이 CD-ROM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판단하고 늘 우려해왔다.

그래도 그동안 형성해온 소니와의 파트너십이 있는데 이걸 내던지길 꺼려하는 야마우치 회장에게 아라카와 사장이 말한다.

머지않아 CD-ROM으로 게임이 나오는 세상이 될거고 이대로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을 추진하면 소니는 닌텐도에 들러붙은 암세포같은 존재가 된다.

필립스랑은 다르게 이놈들은 진지하게 게임업계에 진출하려고 꾸준히 간보는놈들이다.  

이놈들한테 CD-ROM에 대한 권리를 밀어주면 주도권이 소니에게 넘어갈거다. 닌텐도는 지금 소니에 이용당하고있다.

……라는 그의 말은 타당성이 있어보였고 실제로 틀린말도 아니었다.

이 설득에 넘어간 야마우치 사장은 그제서야 사태가 심각하다보고 소니와의 파트너십을 전면 파기하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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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

그는 CD-ROM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고 슈퍼 패미컴의 CD에드온 기기도 별 영향력이 없는 보조기기일뿐.

카트리지가 앞으로도 한동안은 게임업계를 이끌어갈 주요매체라고 보았다.

과거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이 실패하고 다시 카트리지로 회귀한 닌텐도의 전례가

그에게 CD-ROM이란 매체와 에드온 기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준 것 같다.

이런 닌텐도의 갑작스러운 태세변환에 대해 당연히 소니는 항의했지만 닌텐도의 답변은 이랬다.

니들이 개발한 기기는 니들거니까 가지고가서 삶아먹든 구워먹든 알아서 해라. 추하게 권리 주장은 안해드릴게.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 프로젝트에 소니가 투자한 금액은 15억엔이다.

소니는 만들다 만 에드온 기기와 15억엔의 리스크를 안고 공중에 떠버렸다.

이는 업계에서도 꽤나 이슈가 되었고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몇몇 가전업체들이 소니의 이 에드온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선뜻 이걸 떠안겠다고 나서는 업체는 없었고 대다수가 그저 간만 보는 와중,

세가 본사가 아닌 세가 아메리카에서 적극적으로 소니에 접근했다. 세가 아메리카는 사실 소니의 행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에선 망했지만 북미에선 어느정도 선전한 메가CD의 영향이었다.

세가 아메리카는 메가CD라는 기기자체를 긍정적으로 봤고 이 기기에 일조한 소니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니가 만들던 에드온 기기의 성능에 대한 간 보기였으나

이 기기가 예상보다 훌륭하다고 판단한 세가 아메리카에서는 본격적으로 소니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첫 번째 기회.

세가 아메리카는 소니의 에드온 기기를 기반으로 소니와 함께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를 만드는게 어떨까 생각했다.

물론 세가 본사의 아케이드 기판 때려박는 전통을 잘 몰랐던 북미지사였기에 할수 있었던 판단이다.

이에 대해 밥가릴 처지가 아닌 소니는 형님형님 형님빽만 믿겠다였고

소니는 얼마나 급했던지 공동출자해서 하드웨어 개발하면 거기 따른 손실도 우리가 절반 가져가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마저 해버린다.

메가시디를 같이 만들며 이미 세가의 분위기를 경험한 소니는 세가 본사의 프라이드를 잘 알고 있었고

이정도 제안은 해야 그나마 이빨이라도 먹히지 않겠냐 판단한 듯 하지만……..

세가 아메리카와 소니가 가져온 이 제안에 대해 세가 본사임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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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딱 잘라 거절해버렸다.

좀더 알아보고 협상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안돼 돌아가가 나와버리는 세가 본사 임원들을 보며

콜린스키 사장은 훗날 이때의 일이 대단히 황당했다고 회상했다.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그냥 세가 본사임원들의 습관이 그랬다.

세가 본사는 세가 아메리카가 뭔가 가지고 오면 일단 문전박대부터 하고 보는게 습성이 된지 오래였고,

이는 세가 아메리카가 북미시장에서 대성공을 하고 난후부터 본격적으로 심해져서 거의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었는데,

이런 반목은 중간에 낀 나카야마 사장의 책임이 컸다.

나카야마 사장은 북미시장에서의 성공이후 노골적으로 세가 아메리카를 편애하며 세가 본사 임원진들의 불만을 샀고 이게 반감으로 이어졌다는게 정설.

그리고 원래 형제들끼리도 아우가 잘나가면 형이 배알꼴리는 법이다. 여하튼 사이 오지게 안좋았다.

덧붙여 그 시점에 세가 본사에서 이미 준비되고 있던 차세대기 프로젝트도 있었고

세가라는 회사 자체가 프라이드의 화신이었던고로. 세가 아메리카의 그런 행동자체가 세가 본사 임원들의 전투력에 불을 지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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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근본도 없고 게임의 게자도 모르는 소니놈들 기기를 가져와서 쓰라는게냐! 엣헴! 고얀지고.

여하튼 결과적으로 이게 세가에게 있어 첫 번째 기회였다.

소니의 에드온기기는 세가 본사가 생각하는거 이상으로 강력한 기기였고

세가가 그당시 만들던 기기는 세가 본사가 생각하는거 이상으로 후달리고 있었다.

여담으로 닌텐도에게 뒷통수 후려맞고 세가가서 개병신 취급당한 소니,

정확히는 프로젝트 책임자 쿠타라키 켄은 이제 소니에서 짤리느냐 짤리기전에 사표를 쓰느냐 두가지 길만 남은거처럼 보였다.

거의 쿠타라기의 청문회처럼 진행된 소니의 임원회의에서 쿠타라기는 온통 두들겨 맞으면서도 멘탈을 잡아 마침내 최후 변론의 기회를 얻는다.

그는 분노해있는 소니 임원들 앞에서 불판에 머리처박고 도개자를 하는대신 소니의 사장. 오가와 노리오에게 이렇게 말해서 전설이 됐다.

아따 으찌 나한테만 이런다요? 나도 피해자요. 닌텐도 잡놈들이 문제지라. 고 잡것들이 사장님을 무시했당께요?

닌텐도 잡놈들이 우덜 사장님께서 친히 서명하신 계약서를 꾸겨가지고 지들 후장을 딱아부렀응께.

이 잡것들이 우덜 사장님을 을매나 우습게 봤으면 고런짓거릴 해쓰까잉.

우덜 사장님을 자들 똥간에 똥막대기로 본 거시제

우덜 사장님 모욕당한거 생각하면 나가 밤에 잠도 안와부러요.

동네 회사들 다 우덜 회장님 비웃을텐디…..

으미 어쩌스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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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덜 사장님 오가 노리오.

그래서 게임기를 내겠다는 쿠타라기의 말에

그는 아무말없이 한참을 눈감고 있다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는

JUST DO IT! 을 외쳤다고 한다.

쿠타라기는 자존심 강한 오가와 노리오 회장을 집요하게 자극해서 끝내 소니의 게임기 사업결정을 이끌어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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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컴퓨터 엔터테이먼트가 설립.

90년데 플스충들이라면 망막에 이 로고화면이 새겨졌을 것이다.

소니는 닌텐도에 대한 시위의 의미로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닌텐도를 빼버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프로젝트 가칭을 그대로 기기명으로 남겼다.

1993 프로젝트 새턴

초기 세가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32를 때려박자는 컨셉으로 추진되던 가칭 ‘기가 드라이브’는 착실하게 진행되어 어느새 프로트 타입이 나와있는 상태였다.

발매는 94년 연내로 잡혀있었고 세가는 일단 아무런 액션이 없는 닌텐도 보다는 가시권에 들어와있는 3DO에 신경을 썼다.

적어도 3DO보다는 성능이 좋아야 한다가 이 시기 세가 게임기 사업부의 당면목표였다. 그리고 그건 어찌저찌 될 것 같았다.

근데 상황이 조금씩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먼저 아케이드 사업부의 AM2가 모델1 기판을 따로 만들어 이걸가지고 버철 파이터를 내버렸다. 그리고 이 게임은 모두가 아시다시피 대박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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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리도 신기했던지 언론을 제법타면서 이슈가 되어

일본내에서는 게임에 관심없는 일반인들도 알고있던 게임이다.

아케이드 게임이식이 컨셉이고, 그래서 일부러 시스템32를 때려박았는데 모델1은 또 웬말인가 말이다.

게다가 이 기판을 이용한 버철 파이터가 대박을 쳤으니 당연히 소비자들은 세가의 차세대기에서 버철 파이터를 기대하게 될 텐데

과연 버철 파이터는 현재의 기기로 이식이 되는가 안되는가.

이런 논의로 게임기 사업부가 발등에 불이떨어져 우왕좌왕하는동안

아케이드 사업부는 개는 짖어라는 식으로 그 해에 이미 모델1을 업그레이드한 모델2 기판을 내놓고 이미 모델2 게임개발에 한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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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2 90년대 중반 세가 아케이드 게임 황금기를 연 기판.

90년대 중반 오락실 3D게임 아무거나 찍어 뜯어보면 다 이 기판이 나왔다.

세가 3D아케이드 게임이 아케이드를 완전히 장악하게 만든 걸작. 

………이지만 게임기 사업부에게는 재앙 그자체.

애초부터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을 이식하는게 컨셉트였던 주제에 아케이드 사업부와 게임기 사업부가 엇박자로 놀고 있었다는게 웃긴일인데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당사자들이 아니니 알길이 없고 다만,

 각 사업부간에 의사소통이 전혀 안되고 이를 조정하고 관리해야할 경영진은 이런 문제에 손놓고 있었던게 확실하다.

시스템32를 때려박은 차세대기 프로트 타입이 나온 상태에서 전혀 다른 아케이드 기판의 게임이 히트치고 있었다는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와중에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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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오만과 세가의 부심이 만들어낸 괴물 덩어리

그리고 최종보스.

뒷통수를 깐 닌텐도나 문전박대를 한 세가나 소니가 감히 자력으로 게임기를 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실 닌텐도 세가 뿐아니라 그 당시 누구라도 소니의 게임기는 상상 밖의 일이었지만.

더 상상밖의 일은 소니가 발표한 플레이스테이션의 스팩이었다.

쿠타라기 켄이 늘 그렇듯이 다소간의 과장이 있기는 했지만

발표된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은 세가가 주머니에서 반쯤 꺼내놓았던 차세대기를 다시 슬그머니 도로 집어넣게 만들만큼 엄청난 고성능.

특히 3D기술적 측면에서는 세가가 이거 되냐 안되냐 하고 있던 모델1따위는 가볍게 즈려밟고 가시는 클라스에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세가 최신기술이 집약된 모델2에 비교를 해봐야 어찌 각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플레이스테이션은 소니가 88년도부터 지긋하게 만들어오던 기기답게 이 시점에 이미 개발툴과 라이브러리가 완비되어 있어서

각 서드파티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쯤되자 세가는 3DO 따위가 아니라 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을 주적으로 삼게 된다.

나카야마 하야오 사장은 소니의 발표가 있은 직후 세가 본사의 전임원을 소집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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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직원들 지금까지 머했냐 이기야.

소니가 저렇게 만들동안 개발팀들 머했어. 

자기네 아케이드 게임하나 이식못하는 겜기 만들어네 놓고

나 개발자요 나 크리에이터요 하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단 말입니까?

이식이 어려운 자사의 아케이드 게임. 그리고 성능을 아득히 초월해버리는 경쟁기기. 이미 세가가 만든 차세대기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

플레이스테이션 발매는 1년도 안남은 상황. 시간이 촉박했다.

나카야마 사장은 개발팀을 재편성하고 기기를 전면 재설계해서 플레이스테이션 발매일에 맞추어 우리도 같은 성능으로 발매를 해야한다고 못박았지만,

말이 쉬울뿐 그게 가능할리 없다.

그래도 위에서 까라면 까야하는게 조직의 생리인 즉. 되든 안되는 세가 차세대기의 프로젝트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바로 프로젝트 새턴의 출범이다.

듀얼 프로세서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말은 했지만 1년도 안남은 시점에서 처음부터 다시 기기를 설계할수는없는 노릇이다.

결국 기존에 완성되어 있던 기기를 업그레이드하는 수 밖에 없는데 그것도 쉬운게 아니라 진퇴양난.

초기 세가가 추진했던 차세기 개발은 두팀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현 시점에서는 CD-ROM을 채택한 ‘기가 드라이브’가 프로젝트 새턴으로 명칭이 바뀌며 주력으로 떠올라 있었고

카트리지 탑재형 후보인 프로잭트 쥬피터는 개발 동결된 상황이었다.

세가가 그나마 지금 고쳐볼 수 있는건 프로트 타입까지 나와있는 프로젝트 새턴.

결국 세가는 새턴에 CPU를 하나 더 갖다 붙이는 무식한 방법으로 스팩수치를 업그레이드 했다. 이른바 듀얼 프로세서다.

병렬처리한 CPU 두 개를 활용하면 막대한 성능을 낼수 있다. 뭐 이런논지였는데

이게 역설적으로 병신같지만 멋있는 세가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기도 하다.

듀얼 CPU를 이용해 각 CPU에 처리할 데이터를 분산시켜 싱크를 맞춰라라는 건데,

보통 게임 개발사들은 이런짓을 못한다.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다.

대부분의 게임 개발사들은 이런 경험도 없고 이런 난이도를 감수할 능력도 없는게 현실이다.

근데 세가는 놀랍게도 이런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온 집단이었다.

세가의 아케이드 기판인 시스템24가 이런 듀얼 프로세서 구조였고 세가는 이런 기판을 이용해서 히트작들을 양산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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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24  MC68000 CPU를 2개 이용한 듀얼 프로세서 구조

80년대 중반 이 기판으로 행온과 아웃런이 만들어졌다.

이런 경험이 있는 세가다보니 듀얼 프로세서 구조를 생각해내고 아 이거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겠지만,

일본내 게임업계에서 듀얼 프로세서 구조를 이해하고 활용한 게임 개발사는 세가말고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건 북미쪽도 마찬가지였던지 세가 본사가 듀얼 프로세서를 탑제한 시제품을 세가 아메리카에 보내자마자 세가 아메리카에 비상이 걸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조잡한 구조와 듀얼 프로세서는 게임 개발이 거의 불가능할 거 같아 보였다.

세가 아메리카가 평가하기에 일본 본사의 새턴은 엉망 그자체였고. 결국 콜린스키 사장은 본사가 싫어할 줄 알면서도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째 기회

세가 아메리카는 일찍이 소니와 차세대기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며 플레이스테이션의 대략적인 구조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은 CG분야에서 독보적인 회사인 실리콘 그래픽스의 신세를 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콜린스키 사장은 곧바로 실리콘 그래픽스에 문의를 한다.

때 마침 실리콘 그래픽스는 새로 개발중인 칩셋이 있었고 이를 살펴본 콜린스키 사장은 이게 플레이스테이션을 능가할 수 있다고 판단.

세가 본사에 보고를 하게 된다.

세가 본사는 늘 그러던 것처럼 세가 아메리카의 보고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새턴의 심각성을 도저히 그냥 넘길수 없었던 콜린스키 사장은

과거 소닉번들을 요청하던때의 패기로 들이대어 마침내 세가 본사에서 임원들을 직접 미국으로 불러들여 칩셋의 시연회까지 강행한다.

이때의 경험을 콜린스키는 이렇게 회상한다.

본사의 하드웨어 팀들은 칩셋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래서 안된다 저래서 안된다. 그들이 미국에 온 이유는 안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서인거 같았다.

이 새로운 칩셋에 대해 세가 본사와 세가 아메리카가 상반된 견해를 보이는 가운데

결국 선택권은 나카야마 사장에게 있었다.

나카야마 사장은 독선적인 성격으로 한번 옳다고 믿은 일에 대해서는 타협없이 밀고나가는 타입이었고 

그의 이런성격이 과거 세가 아메리카가 북미시장에서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였다.

세가 아메리카야 마케팅을 잘할 뿐이지 게임기는 10년이상 개발해온 본사 직원들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하는 논리로 나카야마 사장은 게임기 개발에 관해서는 본사쪽의 의견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세가 아메리카는 결국 새로운 칩셋의 도입을 포기하고 만다.

세가 본사와 세가 아메리카가 칩셋의 도입을 놓고 차일피일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실리콘 그래픽스는 칩셋이 세가에 납품될 걸로 알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고

중간에서 바람잡이를 하다가 본의아니게 뒤통수를 날린 꼴이된 세가 아메리카에서는

미안한 마음에 이 칩셋을 닌텐도와 연결해주게 되는데 이게 훗날 닌텐도64의 원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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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그래픽면에선 플레이스테이션을 씹처바르는 그 세대의 최강성능의 기기.

그러나 카트리지를 고집한 탓에 용량부족으로 자멸.

일본에선 망했지만 한정된 장르의 게임을 잘 뽑아내며 북미시장에서 3000만대를 넘게 팔아 나름 성공했다.

세가 아메리카 1994

이 무렵 북미시장의 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세가 아메리카의 미친 마케팅능력에도 불구하고 기기의 성능차는 이제 말장난이나 눈속임으로 넘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급기에 슈퍼닌텐도는 다시 세가 제네시스를 밟고 올라서며 시장1위를 탈환한다.

94년 슈퍼닌텐도로 발매된 동킹콩 컨트리. 3DCG로 캐릭터와 배경을 모델링한 혁신적 기술의 게임.

세가와 달리 닌텐도는 차세대기가 아직 먼 이야기인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슈퍼패미컴에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었다.

게임자체의 퀄리티도 그렇지만 이젠 대놓고 세가를 놀리는 광고를 보라.  NINTENDON’T도 옛말이 된지 오래.

세가 본사가 북미보다는 일본시장에 중점을 두는것과 마찬가지로 세가 아메리카는 오로지 북미시장에서의 시장 지배력 수성이 당면목표였다.

이미 일본 본사주도의 차세대기 새턴이 기정사실화 된 94년초 세가 아메리카에서는 계속되는 닌텐도의 시장잠식에 대응할 방안이 없어졌다.

슈퍼 닌텐도와 제네시스의 극심한 성능차이는 이제 ‘폭발적인 연산속도’ 따위로는 극복이 안된다.

이런상태에서 세가 아메리카는 지속적으로 제네시스에 대한 지원을 세가 본사에 요청해왔고

세가 본사에서는 그 일환으로 소위 ‘프로젝트 마스’라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Project Mars

이전에 언급했듯이 이 시기 세가가 개발하고 있던 여러 컨셉트의 게임기기들을 가리켜 플레닛 프로젝트라고 불렀는데

이중 CD-ROM 기반의 ‘기가 드라이브’는 차세대 플렛폼으로 재편성되어 ‘프로젝트 새턴’이 되었고

카트리지 타입의 32비트 기기는 프로젝트 쥬피터로 명명되었다가 중간에 동결.

그리고 정체불명의 프로젝트 마스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 마스는 엄밀히 말하면 플렛폼 기기 개발 플랜이 아니라 세가 아메리카의 요청에 따른 제네시스 보완 업그레이드 플랜이었다.

이 마스의 실험작이 바로 그 유명한 제네시스의 비추얼 레이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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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1 기판으로 제작한 아케이드 레이싱 게임. 제네시스로 이식되었다지만 제네시스 자체의 수준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그래픽도 아케이드에 비해 대단히 후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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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에다 특수칩을 때려박아서 모델1의 성능을 제네시스에 구현하는 컨셉으로 비교적 성공적퀄리티로 나오기는 했는데

코스트가 장난아니게 들어가는 바람에 타산이 안맞아 중도 포기하고 만다.

결국 세가 본사에서는 프로젝트 마스를 제네시스 하위호환의 업그레이드 기기로 제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른바 제네시스보다 약간 더 성능이 좋은 제네시스의 후속 기기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보통 이런식으로 장사를 하는 콘솔업체는 없지만

세가는 또 놀랍게도 이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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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거. 세가 마크3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해외판으로들 알고계시지만 일본내에서도 팔았다.

세가는 과거 세가마크3를 세가 마스터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 해서 다시판 전례가 있었다.

이때야 콘솔을 내는 줄줄이 망하던 시절이라 크게 나쁠 것도 없었지만

북미 쉐어2위를 가지고 있는 제네시스로 이런 장난을 치는 건 대단히 위험한 경영판단인지라.

세가 본사의 이 플랜을 전해들은 세가 아메리카는 기겁해서 그럴거면 차라리 에드온으로 만들어 달라고 의견을 냈고

세가 본사도 아 그럴까? 하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

결국 94년 초 세가 아메리카와 의견 조율 끝에 프로젝트 마스는 제네시스 에드온 기기로 가닥을 잡게 된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슈퍼32X다.

의외로 이 기기는 세가 아메리카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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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딱히 뭐 차세대기를 의도한건 아니니까!

32X는 94년초에 결정된 이후 그 해 여름에 발표가 되는 굉장히 빠른 행보를 보이는데

이는 이미 만들어져 있던 카트리지 타입의 32비트 게임기인 프로젝트 쥬피터를 베이스로 개발을 했기 때문이다.

이건 의도했다기보다 빠르게 성능 업그레이드 에드온을 만들려다보니 나온 임시방편 같은 것이었는데,

이렇게 프로젝트 쥬피터가 마스에 흡수되면서 프로젝트 마스, 제네시스 에드온 기기는 자연히 32비트의 고성능으로 스팩이 올라가고

초기 기획과는 달리 차세대기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아예 확실하게 지르자고 판단했는지 쥬피터의 설계를 대거 바꿔서 새턴과 동일한 CPU를  탑재한 말그대로의 차세대기로 만들어버렸다.

애초에 슈퍼 닌텐도에 대항할 수 있을만한 자그마한 성능 업그레이드 킷이나 하나있음 좋겠다라는 세가 아메리카의 소박한 바램으로 시작한 것이

하다보니 체급이 달라져서 이젠 슈퍼 닌텐도가 아닌 3DO 아타리 재규어 플레이스테이션 심지어 세가 새턴의 32비트 게임기들과도 견주어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

동일하게 보이지만 절대 동일하지않고 어딘지 한참 뒤쳐졌지만 그래도 동일선상이라고 예의상 말해줘야 할거 같은 이상하고 묘한 경쟁구도의 결과를 가져왔다.

가격은  에드온 답게 170달러 정도로 차세대기 라곤 할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고, 성능자체도 나쁘지는 않아서

동시기에 시장에 나와있던 32비트 게임기들,

특히나 같은 카트리지 타입주제에 스스로가 64비트라고 뻥카치고 다니는 문제아 아타리 재규어정도는 지그시 밟아줄수 있는 견실한 에드온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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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고보면 이놈이 세가 타워보다 더 심각한 또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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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같은 같은 좆밥은 이길수 있지?

문제는 너무 빠르게 결정되고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서드파티를 모으고, 게임을 개발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었다.

94년 봄에 세가 본사와 세가 아메리카가 ‘까짓거 그렇게 합시다!’로 합의를 본 이후 32X는 냅다 그해 겨울에 북미에 발매가 되었다.

근 반년만에 개발완료에서 발매까지 되었는데 이는 물론 기존에 개발해놓은 프로젝트 쥬피터 덕에 가능했지만

발매일에 맞춰 런칭할 게임을 개발할 서드파티들은 게임을 급조하는거 말고 다른 선택이 없었다.

결국 32X 초기 타이틀은 대부분이 성능을 전혀 못살린 조잡한 게임들로 메워지게 되면서 재규어를 비웃을 수가 없게 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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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X로 발매된 버철 파이터는 세가 새턴판보다 퀄리티가 높기로 유명. 같은 모델1 게임인 스타워즈 아케이드도 완벽이식.

특히 스타워즈 아케이드는 스타워즈란 이름만 들어도 오르가즘을 느끼는 양놈종특에 힘입어 대단히 좋은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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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철 레이싱도 이제야 제대로 이식

그래도 세가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모델1의 이식작 게임들은 퀄리티가 대단히 높았고 스타워즈 아케이드처럼 북미유저에게 제대로 먹히는 게임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이때까지도 북미에서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던 세가의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제네시스의 시장 점유율에 힘입어 32X는 발매후 판매호조를 보인다.

많은사람들이 32X가 나오자마자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폭망했다고 알고있는데 그렇지 않다.

초기 런칭은 폭발적이진 않더라도 아주 나쁘지는 않았고 장기적으로 뭔가 비전이 있어보이기도 했다.

이 32X의 초기성과가 고무적이었던 세가 아메리카는 어쩌면 이걸로 다음세대를 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지금 보면 좀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했던 모양이다.

사장 콜린스키는 이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난 차라리 세가 본사가 새턴을 북미에 출시하지 않았으면 했다.

세가 아메리카가 새턴을 이당시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의 북미 제네시스 쉐어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세가 아메리카는 이미 세가 본사의 새턴을 결함기로 판정하고 이게 북미에 발매되면 그간 고생해서 닦아놓은 북미의 쉐어를 죄다 까먹을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니 차라리 어정쩡해도 제네시스의 쉐어를 그대로 끌고갈수 있는 32X에 투자와 마케팅을 하면

차기 1위는 못해도 현재의 2위는 유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세가 아메리카가 잠시나마 가졌던 것 같다.

이미 슈퍼닌텐도에 성능이 한참 딸리는 제네시스로도 잘버텨온 마케팅에 노하우가 있으니 나름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의 시각이나 지금의 시각이나 32X는 도저히 무리고

일본 본사에서도 32X는 그냥세턴 발매전가지의 반창고 취급이었다고 한다.

세가 본사가 아케이드 뽕에 취해 있었다면 세가 아메리카는 마케팅 뽕에 취해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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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아메리카가 꿈꿨던 미국의 가정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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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가 아메리카가 보기에 성능도 후달리고 여러 가지 문제도 많은 에드온이었지만

그래도 뭔가 잘만 키우면 될성싶은 떡잎의 가능성도 동시에 엿보이던 이 32X를 밟아죽인건 다름 아닌 세가 본사였다.

이제 새턴이 나올차례인데, 너무 길어졌으니 다음에 써보도록 할게.

원래 저번에 한번으로 다 끝내려고 했는데 못끝내고 이번에도 이렇게 됐다.

쓰다보니까 주체가 안된다.

미안하다.

선비님하
너 이 새끼 게임 쪽 밥 먹고 살지? 반갑다.

몇 가지 코멘트랄까 보충.

당시 게임업체였던 허드슨이 충동질해서 허드슨과 합작으로 개발되었다고 알려져있다.
→ 저거 매체인 Hu-Card라는 게 허드슨에서 납품하던 거임.

아케이드 카드라는 것도 도입해 SNK의 격투게임들을 완벽에 가깝게 이식해내는 짓도 했다.
→ 램을 늘려주는 기계기는 했는데, 아쉽게도 PC엔진의 스프라이트 수 자체가 부족하고 CPU가 느려서, 실제 이식도는 개판이었음. SNK 게임이 제일 잘 이식됐던 건 메가드라이브나 메가CD.

특히 미소녀 게임이 그 비쥬얼과 음성더빙으로 각광받아 소위 오덕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 전연령이라 미소녀 게임 같은 건 별로 없었다. 그 때 얘기로 하면 비주얼 노벨 같은 거였지. 은하아가씨전설 유나라든지 등등. 외려 PC엔진에서 히트했던 건 RPG. 에메랄드드래곤, 이스 시리즈, 걸리버보이, 코스믹판타지, 재나두, 영웅전설, XZR, 사크, 프레이 등등.

닌텐도는 소니의 CD-ROM 에드온은 전면취소 하고 필립스와 계약된 CD-I 공동 플렛폼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 발표해서 소니를 제대로 엿먹였다.
→ 그래서 CD-I 버전 젤다도 있음ㅋㅋ

참고로, 닌텐도가 당시에 CD롬을 선택하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는 카트리지 공장 때문임. 심지어 지금도 닌텐도에 게임 넣으려면 카트리지를 닌텐도한테 주문해야 될 정도로, 닌텐도의 중요한 수입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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