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4. araboja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3 http://www.ilbe.com/4987153683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2  http://www.ilbe.com/4983004191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1  http://www.ilbe.com/4981651745

지난번 이야기는 마추픽추->티티카카호수->티아우아나코로 이동하며 이야기가 전개되다
티아우아나코의 항만시설 푸마푼쿠에서 멈췄지.
이번엔 티아우아나코,푸마푼쿠->멕시코 유카탄주의  치첸 이트사->베라크루스 주(올멕 문명의 중심지)
->타바스코 주
(책의 내용이 유적을 쫓는 내용이다 보니 이동이 잦으니 잘따라와줘)
그럼 푸마푼쿠에 부터 시작해볼게
포스난스키의 비전통적 계산에 의하면 티아우아나코가 항구로서 번성했던 것은
기원전 1만 5000년 쯤이야. 앞서 말했듯이 이당시에 티티카카호수의 해수면은 30m
더 높았고 티아우아나코는 그당시 섬이였다고 해.
밑의 그림 참고
제방을 만드는 데에 사용한 블록이 지금도 현장에 남아 있는데, 하나의 무게가 보통 440t 정도야
이곳에는 그외에도 100~150t 사이의 많은 블록들이 남아 있어. (최대 무게 800t)
또한 많은 거대한 바위들이 대문자I 형태의 연결용 금속으로 고정되어 있었던 흔적이 확실히
남아있어.남아메리카 전체에서는 연결용 금속을 사용한 기술은 티아우아나코에서만 발견되
(그러나 상 이집트 의 나일강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의 유적에서 비슷한 연결용 금속이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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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자 모형의 금속 이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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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부두 or 제방, 이곳에서 수백척의 배가 동시에 하역이 가능했을거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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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의 크기를 짐작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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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t 가량의 무게가 나가는 제방에 사용된 블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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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 수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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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모양의 거석들)
(H모형의 거석은 거석간에 딱 끼워맞추게 제작 되었을거라는 이미지)
또한 많은 돌에 새겨진 십자인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보수적인 연대학자들도 이 십자인이
1500년도 더 된것이라고 한다. 스페인 선교사가 처음 알티플라노 고원에 나타나기 1000년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뿌리가 같은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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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모양의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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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현재 푸마푼쿠 주변에는 낮은 피라미드 형태의 언덕이 있고 그언덕 대부분이 키가 큰 잡초로
뒤덮여 있어. 몇십 개의 블록들의 잔해가 한쪽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어.
포스난스키는 이것을 기원전 1만 1000년~기원전 1만년 사이에 자연의 대재해가 티아우아나코를
습격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해.
‘돌연한 대변동은 지진이었고, 화산이 분출하는 중에 티티카카호수의 물이 흘러 넘쳤다.
홍수의 원인으로 북쪽의 보다 높은 곳에 있던 제방의 붕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방이 티티카카 호수로 물이 흘러들어갔고, 그것이 격류가 되어 밀려들었을지도 모른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
‘해저생물인 팔루데스트리나 쿨미네아, 팔루데스트리아 안데콜라, 안시루스 티티카센시스,
등이충적층에서 대홍수로 죽은 사람들의 유골, 또한 다양한 오레스티아스의 해골, 현재의
보가스의 친족인 물고기들과 뒤섞인 채 발견되었다. 인간의 유골도 같은 충적층에 함께 존재했다.
게다가 인간과 동물의 유골은 누운채로 발견되었다.’
즉, 티티카카호수와 현재는 19km 떨어져 있고 30m 높이에 위치한 티아우아나코에 티티카카
호수의 조개, 누운채로 발견된 동물과 인간의 유골, 그 밖에 도구, 농기구 등등이 충적층에서 발견된다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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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이미지)
저자는 포스난스키의 견해가 옳다면 이 재해가 발생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1만 2000년도
더 되었고  그 후로 고원의 문화는 다시 발전하지 못하고 전면적으로 쇠퇴했다는 거야.
티티카카 호수의 홍수를 일으킨 지진 후에도 많은 대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고원의 문화의
쇠퇴는 가속적으로 진행되었어. 처음에 팽창하고 흘러넘쳤던 티티카카 호수의 물은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어.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호수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떠나버렸지.
동시에 티아우아나코 주변의 기온도 저하되어 농작물 재배가 어렵게 되었는데 옥수수는 충분히
익지 않았고 감자조차 만족스럽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그래.
지진에 의한 홍수에 기온까지 나빠지자 사람들은 티아우아나코를 등진채 다른곳으로 이동하게되.
-티아우아나코–>유카탄 주의 치첸 이트사
이걸 끝으로 저자는 멕시코로 이동을 해.
도착한곳은 멕시코 유카탄 주의 치첸 이트사 라는 지역이야.
‘쿠쿨칸의 신전은 4개의 계단은 각각 91개 정상의 계단까지 합하면 정확히 365칸이였고 이는
지구의 1년 일수와 같다. 또한 이고대신전의 기하학적 디자인과 방위는 스위스 시계와 맞먹을
정밀도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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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쿨칸의 신전)
스페인에 정복되기전 이지역 사람들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빈번히 거행되었다고해.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그런 장면들 말야. 사람을 산채로 잡아 심장을 도려내고 그 심장으로
의식을 행하는 다소 야만적인 의식들..
1200년전 만들어진 치첸 이트사의 유적은 마야족과 토텔족의 요소가 섞인 혼합사회의 산물이야.
이런 잔혹하고 야만스러운 의식은 이 사회 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번성한 모든 토착문명에서
이런 의식이 있었어.
이러한 야만적인 문화는 ‘올멕문화’에 뿌리를 둔다. 올멕문화는 중앙아메리카의 어머니 문화라
불리며 약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이다. 그후로 2500년후 스페인기에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있는 오래 되고 뿌리 깊은 풍습을 이어 받은 것은 ‘아스텍 문화’ 였다.
기록에 의하면 한번의 의식에 8만명의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1년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25만명에 이르렀다. 미개함 ㅆㅅㅌ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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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몰이 배앞에 두고 있는 접시, 금방 잘라낸 신선한 심장이 놓였던 곳이라 한다.)
아스텍 인들은 우주에 대 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에 정복됐을 때 는 제5태양의 시대였다.
 제1태양인 마틀라크틀리 아틀은 4008년간 계속되었다. 이 시대에는 거인이 살았다고 한다.
첫번째 태양은 대홍수에 의해 망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물고기로 변했지만 한쌍의
남녀만이 물가의 큰나무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아 다시 세계에 인간의 숫자를 늘렸다.
제2태양인 에어코아틀은 4010년간 계속되었다. 이 사람들은 야생과일을 먹으며 살았는데
에에코아틀(바람의 뱀)에 의해 멸망되었다. 사람들은 원숭이로 변했지만 한쌍의 남녀가
바위를 잡고 멸망에서 벗어났다.
 제3태양인 틀레이키야우일로는 4081년간 계속되었다. 제3태양은 불에 의해 멸망되었다.
 제4태양 트손틀리릭은 5026년 동안 계속 되었다. 사람들은 피와 불의 홍수속에서
기아로 죽어갔다.
제5태양에 있던 아스텍 인들. 그중에 신관들을 ‘곧바로’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제 5태양이
끝에 와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시기에는 종말의 시기를 계산하는 법이 잊혀진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보가 없었으므로 인간들을 제물로 바치면 조금이라도 제5태양의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 믿었다.
아스텍인들은 계산하는법을 잊었지만 제5태양이 끝나는 날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그들이 마야문명이야. 마야문명의 비문에 의하면 제5 태양이 끝나는 날은
바로 2012년 12월 23일이였어.
 저자는 이것에 대해 20세기 후반의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풍토에서는 인류 종말의 날에
대한 예언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시대에 어긋난다고 했어.(책은 1996 출간번역)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그날 아무런 일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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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비라코치가 있었다면 멕시코에는 케찰코아틀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비슷한
스토리의 전승이 있는데 저자는 케찰코아틀을 비라코차의 멕시코 판 쌍둥이라고 표현했어.
비라코차처럼 케찰코아틀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었어.
중앙  아메리카의 일부 지방 , 특히 키체 마야 족사이에서는 ‘구쿠마츠’, 치첸 아트사에서는
‘쿠쿨칸’ 그러나 말은 달라도 뜻은 같았어. 이 말들을 번역하면 깃털 달린 뱀 이라는 뜻이야.
물론 케찰코아틀의 의미도 그러하고
또  마야에는 보탄이 있는데 그는 문명을 전파한 사람으로 간주되어지고  역시 하얀 피부에
턱수염을 기른채 긴 겉옷을 입고있어.  관련 인물로 이참나가 있는데 마야의 치료의 신으로
턱수염을 기른채 긴  겉옷을 입었고 상징은 방울뱀이야.
모든 전설은 케찰코아틀, 쿠쿨칸, 구쿠마츠, 보탄 , 이참나는 아주 먼곳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일치해. 또한 그들은 인간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왔던 방향으로 다시 배를 타고 떠났으며,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어.
‘즉, 이 전설들이 이들을 공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디오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턱수염,하얀피부등등) 모습이였고 한명이 아닌 여러명 이였으며 이들은 가족관계와 같이
매우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어. 가족이 아니여도 제자나 조수의 형태로도 많이 묘사되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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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코아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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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코아틀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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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탄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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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찰코아틀 순금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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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쿨칸 석상)
그럼  전설들을 보도록 할게
‘쿠쿨칸은 19명의 동료와 함께였다. 그 가운데 두사람은 물고기의 신이고 두 사람은 농업의 신
한사람은 벼락의 신이였다. 그들은 유카탄에 10년간 머물렀다. 쿠쿨칸은 훌륭한 법률을 제정했고,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배를 타고 떠났다.’
‘태고에 멕시코에 온 사람들은 20명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를 쿠쿨칸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늘어진 겉옷을 입었고 샌들을 신었다. 또한 턱수염을 길렀으며 대머리였다. 쿠쿨칸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말했으며 중요한 건축물을 많이 지었다.’
‘케찰코아틀은 세련된 몸놀림에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천으로 만든 긴 겉옷은 앞이 터져
있었고 모자는 쓰지 않았다. 옷의 목 부분은 깊이 파였으며 소매는 짧아서 팔꿈치에도 미치지 못했다.
케찰코아틀의 제자들은 모든 일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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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상단 표시가 유카탄주의 치첸 이트사, 가운데 표시가 베라크루스)
-치첸 이트사 -> 베라크루스 주
 베라크루스 안에서는 (트레스 사포레스->산 로레소->라벤타)순으로 이동할거야.
저자는 이스텍 문명의 뿌리인 올멕문명에 대해 더 알고자 올멕문명의 중심지인 멕시코만에
맞닿아 있는 베라크루스로 가. 앞서 말했듯이 올멕문화는 아스텍보다 1500년전에 존재하고 있었어.
올멕은 ‘고무 사람들’ 이란 의미야.  이 지역에 고무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던것 같아.
1970년대에 석유가 개발되면서 많은 유적지들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저자는 그래도 유지가 잘된곳을
찾아가. 그 지역은 트레스 사포테스, 산 로렌소, 라벤타야.
이곳엔 무게가 30t 가량되는 두부들이 많다고 해. 바로 이런 모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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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모습을 한 조각상,올멕의 머리석상, 이름은 코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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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스 사포테스에는 마야의 점과 선으로 표시된 역법체계가 스털링에 의해 발견됐는데
이것을 조사해보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 마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연대는 228년인데,
이 역법체계에 나온 연대는 기원전 32년 9월3일 이었던거야.
이게 왜놀랍냐면 이 지역은 마야의 유적이 아니라는거야. 즉, 다른 다른 문명이라는 거고
올멕 문명이 마야의 어머니 문명이라고 말할수 있는 증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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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테스에서 발견된 역법체계 이미지)
사포테스 -> 산 로렌소
이곳은 올멕의 땅인 동시에 케찰코아틀의 전설에 나오는 ‘뱀의 성지’ 장소이기도 해
문명은 수십톤에 이르는 돈들을 96km 나 떨어진 채석장에서 이곳으로 운반하여 문명을 건설하였어.
이러한 무거운것들을 이동시키고 건축하려면 어느정도 기술이 있어야 할거야.
그런데 여기서 의문인건 올멕 문화의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유품은 멕시코 어디에도 없어.
마치 마법처럼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기술들을 지니게 된것같다 이거야. 역시 이곳에도
위에서 본 두부석상이 많아.
사진은 같은 모습이므로 생략할게
산로레소 ->라 벤타(가는길) ->타바스코주의 비야에르 모사
(저자는 비야에르모사를 가는길에 라 벤타를 들른다.)
라 벤타 지역은 194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많은 유적들이 훼손 되었어.
그래서 피라미드가 있던 지역은 활주로에 의해 둘로 나누어졌지. 이곳의 개발자들은
땅을 편평하게 만들었고 이 지역은 유적 탐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석유개발이 있기전에 앞서 사포테스에서 역법체계를 발굴한 스털링은 이곳에서도
발굴을 했었어. 이 곳은 기원전 400년전까지 올멕인들이 산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원전 400년경에 도시건설은 갑자기 중단되었고 건축물은 파괴되었어.
그리고 작고 큰 조각상들은 산 로렌소와 마찬가지로 특이한 무덤에 매장되었지.
어떤 장소에는 5,000m^3 의 흙을 파내고 구덩이를 바닥에 뱀무늬의 돌블록을 깔고
다시 흙을 덮기도 했어.
라벤타의 피라미드는 원추형으로 높이는 30m, 지름이 60m 정도 체적은 거의 9만 m^3
정도 되. 나머지 유적은 500m 정도 계속되는데 정확하게 북쪽에서 서쪽으로 8도만큼
기울어진 방향의 직선에 위치하고 있어. 이 축을 중심으로 해서 몇개의 작은 피라미드
광장, 대지, 언덕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있어. 전체 넓이는 4.8km^2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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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벤타의 복원도 : 기묘한 원추형 피라미드가 주위를 압도하고 있다.)

사실상 이지역 대부분의 유적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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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같은 두부석상이 주를 이루고 혹은 아래와 같이 멕시코에서는

케찰코아틀로 불리는 모습의 조각상이 간혹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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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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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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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

게이들 눈에도 백인처럼 보이노? 하여튼 난 인디오들처럼 보이진 않네.

라 반타->비야에르 모사

저자는 여기서 가설을 하나 주장해. 제3자가 문명을 전파했다는 거지.

올멕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로의 이행기간이 너무 짧고 수백 수천년이 걸릴 기술적 진화가 너무

급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서서히 발전해간 증거가 없기때문이지.

이러한 모습은 이집트에서도 발견이 되는데 기원전 3500년경 이집트 왕조가 시작되기 전에 발견된

유적에는 문자가 새겨진 흔적이 전혀 없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시대가 지난 직후의 고대 이집트의

많은 유적에서 갑자기 상형문자가 완벽한 형태로 등장해. 사물이나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림 문자가

아니라 처음부터 복잡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문자였어.

이것 외에도 수학, 의학, 천문학, 건축 그리고 이집트의 놀라울 정도로 풍부하고 복잡한 종교와

신화의 구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발전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냐 보다는 그냥 이것 자체에 대한 연구만

한다는거야 그래서 저자는 이부분에 대해 약간 불만이 있는 듯해.

앤소니 웨스트라는 사람은 이 부분에 대해 이렇게 말해

“이집트 문명은 발전한 것이 아니다. 유산을 물려 받은 것이다.

런던대학의 이집트 교수 였던 월터 에머리도 이렇게 말했어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약 3400년 전에 이집트에서는 대변동이 일어났다. 신석기시대의 부족

문화에서 갑자기 조직화된 왕조시대로 돌입했다. 동시에 문자가 등장하고, 거대한 건축물이

건조되고, 예술과 공예가 믿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것은 모두 단기간 안에 완성되었다.

왜냐하면 문자와 건축기술의 근본적인 변화의 배경에는 거의 , 아니 전혀 그 발전의 토대가

되는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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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토트(tho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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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 수메르의 신(sin) )

저명한 이집트학자인 월리스 버지 경은

“두 신이 너무 닮아서 도저히 우연의 일치로

볼수 없다. 이집트인이 수메르인에게 빌려왔거나 하는것은 말이 안된다. 아마 양쪽의

지역의 지식계급이 아주 오래 된 어느 한 원천에서 이 신화체계를 차용한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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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은 이집트쪽 표시, 메소포타미아,수메르 문명은 이라크와 이란 사이지역)

저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 수메르 문명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는

있으나 건축양식이 비슷해서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그렇다면 각 문명간에 영향을 준것일까? 그러나 그렇기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제3자가 각각의 문명에 개별적으로 문명을 전파하였다면 더 설득력이 있대.

그렇다면 그 제3자는 중남미 아메리카에 문명을 전파하고 구대륙으로 넘어 온것일까?

이가설이 증명되려면 멕시코의 고대문명과 수메르,이집트 고대문명 사이에 문화적으로 유사점이

있어야 할 것이야. 역사 이래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제각기 다른 진화를 해왔기

때문이지.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은 문화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두문화간에는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이야.

비야에르모사->오악사카

그렇다면 유사점에 대해 보도록 할게

1.이집트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난쟁이들을 무척 좋아했어. 고대 중앙 아메라카의 올멕인들

또한 마찬가지였지.

2.이집트에는 9신(Ennead)이 있고 마야와 아스텍인들도 전능한 9신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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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9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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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9신)

3.마야족의 책 [포폴 부]에는 별로 환생하는 신앙에 대한 기술이 몇군데 나와. 죽은 사람이 별이되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인야. 앞서본 케찰코아틀에 대한 전승을 보면 고대 멕시코의 숭배자들은

케찰코아틀의 육신이 나중에 별로 다시 태어났다고 믿었다고해.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 이집트에서도 죽은 왕야 별로 다시 태어난다는 종교관이 있었어.

4.이번엔 다시 이집트야. 이집트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그리고 저승세계의

여러 단계를 통과하는데에 필요한 말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

중앙 아메리카의 사람들도 죽은뒤에 닥쳐올 재난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

저승이 9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죽은사람은 4년동안 저승의 9층을 여행하면서

위험을 극복한다고 했어. 각층에는 이름이 붙어있었어. ‘칼의산’ ‘화살이 날아다니는 장소’등등.

두문명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작은 배를 타고 저승세계를 여행한다고 생각했어.

5.고대 멕시코인들은 저승의 7층은 ‘야수가 심장을 탐욕스럽게 먹는 장소’ 라고 했는데

이집트에서도 ‘심판의 공간’ 이라는 거의 비슷한 상징이 있어. 여기서 심장이 깃털과 함께

저울에 올려지는데 심장이 죄때문에 무거우면 균형이 무너지고 무서운 야수가 와서

먹어치운다고 나와.

6.마지막으로  이집트에는 ‘입을 연다’라는 의식이 있어. 이 의식은 파라오가 죽으면

반드시 거행하는 의식으로 지위가 높은 신관과 네명의 보좌관이 참가해서 의식에

사용되는 절단용 도구인 페셴크헤프를 사용하여 죽은왕에게 강력한 물리적 충격을 가해.

이 의식이 행해진 장소는 대피라미드의 한 방이 사용되었을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비슷한 의식이 약간 왜곡된 형태로 멕시코에서도 존재했어. 앞서 다소 야만적인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아스텍문화를 봤을거야.  이 의식도 거행된 장소는 피라미드 였어.

마찬가지로 신관과 네명의 보좌관으로 거행되었으며 ,제물용 칼로 희생자에게 물리적

타격을 가했어.

이런 의식을 하면 두 문명에서 모두 저승을 거치지 않고 천국을 간다고 믿었어.

중앙 아메리카에서 ‘제물’ 이란 말은 p’achi 라고하는데 “입을 연다” 라는 의미야.

그렇다면 두 문명간 공통점은 더 강해지는게 느껴지노??

하튼 이런 썰을 풀고 다음날 저자는 오악사카주의 몬테 알반 유적 방문해.

몬테 알반 유적은 만들어진지 3000년이 되엇어. 이곳은 거대한 언덕을 인공적으로

편평하게 깍아서 건설한 것인데, 이곳에서 오악사카가 눈아래로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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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알반 유적에서 바라본 오악사카 전경)

거대한 직사각형의 광장은 몇개의 피라미드와 건축물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각각의 건물들은 기하학적 위치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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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알바 조형도)

몬테 알반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비석이 있는데 거기에는 함께 살다가 함께 죽는

흑인과 백인의 모습이 묘사 되어있어. 베라크루스에서 보았던 다소 우직해 보이던 흑인

두부상 다들 기억하지? 또한 턱수염을 기른 백인의 조각상들 또한 기억할거야.

근데 여기 비석에 새겨진 모습은 다소 다르다 이기…

모두 벌거벗고 있고 대다수가 거세를 당했으며,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야.

또한 춤을 추는 듯한 모습으로 손 발을 뻗고 있는 모습도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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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 두부&풍채있는 사진들과 다르게 확실히 약해진 모습들..)

전에 말했듯이 케찰코아틀의 세력은 한번 ㅁㅈㅎ를 당하는데 저자는 그 모습이

표현된듯 싶다고 말해. 또한 저 비석에 세겨진 흑인의 모습은 의문이 많이가게되는데

그 이유가 흑인이 신대륙 땅을 밟은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인데

수천년전의 비석에 인디오 모습보다는 흑인 혹은 백인의 가까운 인종만 그려진것도

다소 의문이가는 부분이야.

보수적인 정통파 학자들은 이 비석들을 기원전 1000년~기원전 60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있단 말이지..

또한 이곳 사람들도 마야 역법과 마찬가지로 세계의 종말을 2012년 12월 23일로 나타내고있어.

이 역시 마야문명에 영향을 줬을 문명이다 이기..

사실상 가설이 맞다는 전제하에 고대의 문명이 전해준 유산을 끝까지 간직한

문명은 마야 문명이야. 고고학자 에릭톰슨은 “마야종교에서 최고의 불가사의는 시간이다.

마야인들은 인류 역사 가운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간에 대한 의식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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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부터는 여기부터 이어서 마야문명에 대해 알아볼게

세줄요약

1.남미에 비라코차라면 멕시코에는 케찰코아틀이다.

2.근데 중남미 뿐아니라 이집트도 비슷하다 이기?!

3.세계곳곳에 피라미드 지어놓은 새키는 누구?

 

를 뒤로한채 마야문명부터 다음편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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