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3.araboja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2  http://www.ilbe.com/4983004191
초고대 문명에 대하여 [신의지문 편]1  http://www.ilbe.com/4981651745
저번 이야기는 나스카의 지상그림과 그 그림을 누가그렸을까로 시작되서 
비라코치의 등장까지 에 대한 내용이였어.
사진이 많이 부족했던것 같아서 이번부터는 사진을 좀더 많이 올려보려구
한게이가 링크걸어준 나스카의 지상그림 사진이 있는 블로그야
정말 멋진 사진이 많더라구 한번 보면 좋을것 같아.
 
이번에는
마추픽추->티티카카호수->티아우아나코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볼게
 
 
 
저자는 쿠스코를 등지고 마추픽추라는 잉카의 도시로 가는길에
인디오들의 전설을 되짚어보는데.. 그 전설들의 내용을 다음과 같아.
‘인디오들은 대홍수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옛날 이나라에 대홍수가 일어났다고 한다..
인디오들은 대홍수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익사했다.그러나 티티카카 호수에서 한 명의 비라코차가
나타나 티아우아나코에 정착했다. 현재 티아우아나코에는 고대유적과 기묘한 건축물이 있다.
비라코차는 그곳에서 쿠스코로 이주했고, 인류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아코스타 신부가 쓴 [인디오의 자연과 도덕의 역사]에서 인디오들이 말한 자신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최초의 고대 사람들은 죄를 범해서 대홍수로 창조주에게 멸망다했다.
…대홍수 후 창조주는 인간의 형태로 티티카카 호수에 나타났다. 그는 태양과 달과 별을 창조했다.
그리고 지구상에 인간을 증식 시켰다…’
-쿠스코 지역에서 전해져오는 전설
(이러한 비슷한 이야기는 다른곳에서도 들린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구약성서에 대홍수이다(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그 외에도 전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유사한 신화가 발견되는데, 벨라미의 ‘달과 신화 그리고 사람’
‘중국 묘족의 홍수 전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대홍수 그림, 수메르 점토판, 하와이 원주민들의 
홍수 이야기 등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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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의 전경, 저높은 산세 위로 최대 361t의 거석을 옮겨 만든 것이다.)
마추픽추는 너무 높은 곳에 있었던 나머지 유럽 침략자들의 파괴를 면할 수 있었던 기이한 유적이야.

마추픽추의 유적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불멸의 조각이며, 산 정상에서 맞은 편 우아나

픽추를 마주보며 건설된 이 신성한 구조물은 다각형 돌을 완벽하게 서로 맞물려 쌓아올렸으며

자연석도 군데군데 전체의 도안 속에 포함되어있어.

 

그렇다면 마추픽추는 얼마나 된 유적일까?

포츠담 대학의 천문학교수 롤프물러는 1930년대에 설득력 있는 증거를 발견했어

그는 마추픽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천체의 위치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

그 제안에 따라 과거 수천년 동안의 별자리 위치에 대해서 수학적으로 상세히 계산한 결과

(세차운동이라는 현상에 의해서 별자리의 위치는 점점 변한다),

유적은 ‘기원전 4000년~ 기원전 2000년 사이에’ 완성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이는 학계에서 논쟁중인 가설이므로 참고해서 보면 될것 같아.

그럼 전설에서 언급이 되고있는 티티카카호수로 가보자.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스는 거대한 분지에 있는 도시이며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있어.

라 파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티티카카 호수가 있어.

티티카카 호수는 해발 3810미터의 높이에 있는데  길이는 222km, 폭은 112km.

곳에 따라서는 깊이가 300m 곳도 있어 지질학상으로도 수수께끼인 호수야.

조개껍질 화석이 존재하고. 오늘날에도 해양생물들이 살고 있는데 갑각류나 물고기는

수백 키로미터 떨어진 바다에 서식하는 종과 일치해. 어부의 그물에는 종종 해마도 걸려든대.

이 호수는 약 1억년전 융기한것으로 보이는데 융기 후에도 지질학적으로 격렬한 변화를 겪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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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티티카카호수에서 남쪽으로 19km 수면보다는 30m더 높이에 위치해 있는

티아우아나코에 훌륭한 선착장이 있다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이런 유추를 해볼수 있지 과거에는 티티카카호수와 티아우아나코와 접해있었을 것 같아.

즉, 티티카카 호수수면이 낮아졌거나 티아우아나코의 지면이 솟아올랏을거야.

저자는 라 파스 대학의 아르투르 포스난스키 교수와 롤프물러 교수의 천문학과 수학을 이용해 계산한 결과를 근거로

티아우아나코의 건설시기를 기원전 1만 5000년경으로 말하고 그 당시 자연의 대변동에 습격받았다고 주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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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우아나코 위치)

티아우아나코 전설에는 ‘투누파’라는 인물이 언급되.

잉카문명에서 나오는 비라코치와 비슷한 인물인데 이름만 다른것 같아.

하여튼 투누파와 관련된 전설은 다음과 같아

‘투누파가 아주 오랜 옛날에 북쪽에서 다섯 명의 제자를 데리고 알티플라노 고원에 나타났다.

그는 위엄이 넘치는 풍모의 백인으로서 턱수염과 파란눈을 가지고 있었다. 냉정하고 금욕적이었으며,

술에 취하는 일과 일부다처제 그리고 전쟁을 하지않도록 설득했다.’

그러던중 투누파는 질투하는 공모자들의 습격을 받고 상처를 입어.

‘그들은 투누파의 신성한 몸을 토토라 풀로 만든 배에 실어 티티카카 호수로 떠내보내려 했다.

배는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투누파를 살해하려고 뒤쫓아온 잔혹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공포로 전율했다. 이 호수에는 조수의 흐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는 코차마르카 해안에 도착했는데, 현재 그곳에는 데스과데로 강이 흐른다…

인디오들의 전설에는 그곳에 강이 없었는데 배가 해안에 시하게 부딪쳐서 데스과데르 강이

생겼다고 한다. 그 강의 흐름을 타고 신성한 몸은 멀리떨어진 아리카 해안까지 표류했다.’

이 이야기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의 이야기와 공통점이 많아

‘오시리스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문명을 전해주었고, 온갖 유익한 기술들을 가르쳤으며, 식인풍습과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을 폐지시켰다. 오시리스는 이집트를 떠나 세계를 여행하며, 다른나라에도

문명의 은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의형제 세트가 거느린

신하 72명이 음모를 꾸몄다. 오시리스가 이집트에 도착해 연회를 열었다.

나무 상자를 만든후 이상자에 몸이 딱맞는 사람에게 금화를 준다는 제안을 하였는데

그 상자는 오시리스의 몸에 딱맞게 제작된 상자였다.오시리스는 상자에 들어가 자신의 몸이 딱맞아

기분좋게 누었다. 그러나 그것은 음모였고 신하들은 바로 나무상자를 닫아 못을 박고

틈새에 녹인납을 흘려넣어 공기가 통하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상자를 나일강에 버렸다.

계획대로라면 무게때문에 상자가 가라앉아야 했으나 가라앉지 않고 그대로 떠내려가 먼거리의

해안에 도착했다…

그러나 세트는 그 상자를 찾아내어 사체를 14등분 하고 버렸으나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남편의 분리된사체들을 찾아 강력한 주문으로 이전의 몸으로 회복시켰고 오시리스는

죽음의 신이자 저승의 왕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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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 턱수염이 눈에 띈다.)

남아메리카의 투누푸,비라코차 와 이집트의 오시리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아

-문명을 전파했다.

-음모에 빠졌다.

-둘다 죽었다.

-둘다 배 or 용기에 집어넣어졌다.

-물에 띄어보내 졌다.

-강을 표류했다.

-끝으로 바다에 다다랐다.

이것 외에도 고대 나일강과 티티카카 호수의 배는 공통점이 있다.

둘다 독특한 두개의 다리를 벌리고 있는 돛대를 설치하게 되어있다.

또한 둘다 무거운 건축자재의 장거리 운송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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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나일강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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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 배)

그럼 본격적으로 티아우아나코에 대해서 알아볼게

스페인 정복 직후, 볼리비아의 티아우아나코 유적을 찾아온

스페인 여행자들은 건축물에 대해 원주민들에게 물어봐.

“이 유적이 잉카시대의 것이냐?”

원주민들은 웃으며 대답해. “잉카시대 훨씬 전에 지어진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한술 더떠 “이 유물들은 하룻밤 사이에 지어진거야.”

‘큰 돌은 트럼펫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어 16세기 스페인 역사학자 라베가는 스페인 정복후 얼마되지 않아

그곳을 방문해 이런 기록을 남겼어.

‘거대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티아우아나코의 건축물에 대해 서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곳에는 고대에 만들어진 높은 인공 언덕이 있는데, 토대는 돌로 되어 있고 지면이 움직이지

않도록 만들어 졌다. 또한 돌을 잘라서 만든 거대한 조각상이 있다. 그 조각상은 마모되어서

태고의 것이라고 하는 까닭을 이해할수 있었다. 벽이 있는데 너무나도 커서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 이 장소로 갖다놓았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도특한 건축물이 남아 있는데, 가장 경이로운 것은 몇개의 돌문이다.

큰것은 높이 9.1m 폭이 4.5m 두께가 1.8m 에 이른다.어떻게..그리고 어떤 도구와 장치를 이용

해서 이와 같은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해서 이 거대한 돌을 여기까지 옮겨왔는지

알수가 없다.’

다음으로 저자가 말한 티아우아나코 유적의 모습이야

-조각상

티아우아나코에는  학자들이 하나같이 전설에 등장하는 비라코차가 틀림없다는 정체모를

얼굴이 있다. 이 얼굴은 이마는 높고 눈은 동글어. 코는 곧바르고 콧마루는 콧구멍 쪽으로

갈수록 넓어진다. 입술은 두텁고  역시 여기서도 염소수염 모양의 턱수염이 있다.

또다른 조각에는 묘한 동물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거대하고 꼴이 태고의 포유

동물 같은데 그 동물은 굵은 꼬리와 곤봉처럼 생긴 다리를 가지고 있다.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와는 달리 토대가 다소 불규칙적인데 한변이 거의 210m가 되는 건축물이다.

피라미드 다음으로는 인공언덕이 있는데 여기도 피라미드 였을거다.

스페인이 정복하고 나서는 채석장이 되서 남아 있는 블록들이 10%가 되지 않는다.

블록들은 안산암을 만들어 졌다.

-태양의 문(칼라사사야 광장)

두꺼운 사다리꼴 블록으로 만들어진 벽 쪽에 일정한 간격으로 거대한 단검처럼 생긴 바위가

줄지어 서있다. 단검의 높이는 약 3.65m 이며 손잡이 쪽이 알티플로나 고원의 붉은 대지에 꽂혀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방어벽이 세워져 있는데 152m^2의 넓이를 에워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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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의 물고기 복장을 한 인간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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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조각한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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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코치로 보이는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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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사사야를 둘러싼 거대한 석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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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언덕 전경)

저자는 칼라사사야 광장의 건설시기를 천문학과 태양운행의 조정계산에 의해 기원전

1만 5000년전 건설되었다고 해.

이걸 계산한건 포스난스키인데 계산한 방법이 무엇인지 보도록할게

칼라사사야가 건설된 때의 황도경사와 현재의 황도경사의 차이를 통해 계산을 했는데

현재의 황도경사는 23도 27분이야.

황도경사를 이해하기 쉽게 다음과 같이 묘사했어.

지구를 우주에 떠다니는 배와 같다고 생각해보면 배는 파도에따라 일정한 움직임이

있을거야. 지구도 마찬가지로 이런 출렁임이 있어. 지구의 자전축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궤도와 수직이아니라 살짝 경사져 있는데 이 각도의 오차가 황도 경사 라고 해.

경사각도는 주기적으로 변하게되고 이 시간도 매우길어(우리기준에서)

주기는 4만 1000년이고 이 경사각도는 22도 1분과 24분5도 사이에서 움직여.

이걸 토대로 칼라사사야의 건설시기를 추정한건데 경사주기가 태양의 일출과 일몰의

방위각을 몇세기에 거쳐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야.

포스난스키는 태양의 표준 방위각과 차이가 나는 몇개의 건축물을 조사해서 조준을

보충,수정하여 칼라사사야가 건설된 때의 황도경사가 23도 8분 48초라는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했어. 이각도를 천체력 국제회의의 그래프에 조회한 결과

건설시기가 기원전 1만 5000년으로 나온것이지.

포스난스키의 주장에 대해 1927~1930년 사이에 몇몇 과학자들이 검증을 하였고

그 결과 포스난스키의 의견이 기본적으로 옳다는 결론을 내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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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만 5000년전 황도의 일출 방위각에 맞추어 건축되었다고 보는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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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문에서 바라본 광경,이것은 거대한 달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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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문, 캘린더프리즈)

이제 이어갈 내용은 티아우아나코가 기원전 1만 5000년전에 건설되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전개되. 티아우 아나코는 1만 5000년쯤 번성했고 같은시기에 칼라사사야가 건설되었어.

그후 약 5000년간 번성했지. 물론 이당시 티티카카 호수의 수면은 지금보다 약 30m 높았어.

이시기에 항구도시의 주요 항만시설은 칼라사사야로부터 남서쪽으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어.

이곳을 현재 ‘푸마푼쿠'(퓨마의문) 라고 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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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찾아보니 푸마푼쿠에 대해서도 정리할게 많아…

지금 할일도 있고해서 나머지는 저녁때쯤 다시 정리해볼게

원래 여기서 남미쪽은 다끝내려 했는데 요약을 많이해도 양이많네..

푸마푼쿠 후에는 멕시코로 넘어갈거고 뒤에 조금은 복잡한 세차운동이 남아있어.

이게 다끝나야 이집트 피라미드로 넘어갈것같아.

하여튼 읽어줘서 고맙다 이기!! 다음화도 저녁부터 다시써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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