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피라미드의 미스테리. mystery

안녕 지식글에 목마른 일게이들~

 

오늘은 간만에 미스테리 특집으로 글을 써보기로 작정하고 미친듯이 자료를 모아댔어

 

자지같은 음모론이라고 욕하지말고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어

 

 

 

 

대 피라미드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4왕조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말해

 

이 글에서는 기자에 있는 대피라미드를 집중적으로 다룰게

 

4800년전 지어졌다고 ‘추정’하고있고, 높이 148미터에 밀리미터 단위로 재단된 2.5~70톤짜리 석조블럭이

무려 230만개나 사용된 어머니 출타하신 좆쩌는 건축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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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 및 건축기법, 건축기간에대한 모든것이 미스테리야

 

우선 게이들이 알고있을지 모르는 익히 알려진 대 피라미드의 미스테리로

 

 

 

 

1.

대피라미드의 각 면은 완벽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있는데 그때는 나침반이 없던 시절이었어.

게다가 이정도 정밀한 건축에서 방위를 결정하는데에는 나침반을 사용할수 없지.

나침반은 정북을 가리키지도 않을뿐더러 수시로 그 방향이 조금씩 변하는건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야.

오늘날에는 천문용 방위각 측정 장치를 사용해서 원하는 방위를 구하는데, 로그표를 참고한 계산법이 뒤따라야 해.

 

 

 

현대 과학으로 건축한 파리천문대의 방위가 6분정도 빗나가 있는데, 피라미드는 단 3도 빗나가 있고

이마저도 지층에 의한 함몰에 의한것이라고 밝히고있어.

현대의 공학자와 건축가들도 현대기술로는 이러한 건축물을 지을수없다고 단언하고있지.

설령 지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이 그런 지식을 어떻게 가지고있었는지가 미스테리야.

 

 

 

피라미드의 높이에 10억을 곱하면 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149,504,000)와 일치하고

피라미드를 관통하는 자오선은 대륙과 대양을 정확히 절반으로 관통해.

그리니치로부터 경도 31도인 수직선과 북위 30도인 수평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지구 대륙의 넓이를 4등분하는 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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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서 피라미드와 지구 중심까지의 거리는 북극까지의 거리와도 정확히 일치해.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피라미드를 건축한 사람은 지구의 공모양과 대륙과 대양의 분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무서운 결론밖에 낼 수가 없어

 

 

 

 

뿐만아니라 대피라미드와 나머지 두개의 피라미드를 기준으로 삼각측량을 실시하면 이집트는 물론이고 전 지구를 다 측정해 낼 수 있어

실제로 나폴레옹의 원정군이 이를 이용해서 이집트의 지도를 그렸다는 설화는 유명하지.

 

 

 

게다가 밑변둘레를 2x높이로 나누면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3.1416.  파이가 나와.

피라미드의 옆면 삼각형과 밑면 정사각형 한 변의 길이의 비는 1.618로 인류가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황금비율과도 일치하지

 

 

600만 톤이 넘는초거대 건축물이 세워지려면 지반이 중요해.

오늘날 까지 피라미드가 침하된 정도는 5mm 정도라고해.  요즘 천조국에서 대형 빌딩에 적용하는 지반 침하 기준인

100년간 15Cm 와 비교해보면 그 건축 연대를 고려할 때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수치야.

요즘 내부가 텅텅빈 비교적 가벼운 대형빌딩도 아니고 속이 아주 꽉 찬 말그대로 돌무더기가 5000년간 5mm라니ㅋ

현대에도 이런 건물은 못짓는다…이 얘기야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별자리의 지표로 불리는 오리온벨트와 동일한 좌표에 각각 위치하고있어.

천문학쪽은 사실 나도 잘 몰라서 그 이상은 패스할게~

 

꿈보다 해몽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수학적인 계산들이 들어가있어서 섣불리 우연으로 치부 할 수 없다는게 함정이야.

 

 

 

 

2.

돌들의 무게가 684만 8000톤으로 적재량7톤짜리 화물로 운반하면 97만8286대의 화물차가 필요하고

이 화물차를 연결하면 길이는 6200킬로미터에 이르지.

 

석재를 나무도르래로 옮겼을 것이라 추정하지만  이집트의 나무의 대부분인 종려나무는 그 수도 희박했고

이집트인들의 중요한 식량인 열매와 그늘을 제공하기에 종려나무로 운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해

 

수레나 말을 이용한 운반법도 모르던 시절이고 게다가 나무를 수입할 수 있는 선박이나 마차의 기술도

기원전 제17왕조때에서나 등장했고 그 이전에는 오로지 인력만이 쓰였다고 해

 

그리고 벽돌과 흙으로 경사로를 만들 수 없다고해. 경사로는 피라미드에 사용된 석회암보다도 견고하지 않으면 무너진다고 하는데

이는 현대의 공사 전문가와 건축가들이 이미 증명한 사실이야. 또, 설령 석회암을 사용했다손 치더라도 작업이 끝난후에 남은 돌들은

어디로 없어졌는지도 밝혀내야만 하지.

 

 

 

 

 

 

3.

쿠푸 재위기간 22년간 건축되었다는 추정에 따라 피라미드를 건축할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당시의 이집트 인구를 5000만으로 추정해야하는데 지금까지 연구된 당시 전세계 인구 2000만에 명백히 위배되는 수치야.

거대한 작업장에서 인부, 석공, 기술자, 노예, 제사장, 상인, 농부를 빈약한 나일강 삼각주에서 경작되는 농산물로 먹여살릴 방도도 없지

 

또한 22년동안 건축되었다면 돌 하나를 자르고 옮기는데 단 9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와 학자들을 당황케 했어.

이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지. 웃기는건 이집트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가 20년동안 10만명을 정설로 제시하고있으면서

그나마도 1년내내 일을 한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나일강의 범람을 피해 1년에 3개월을 일했다고 하는데……..1년 365일 내내 하루10시간씩 일해도 1시간에 31개의 돌을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분으로 따지면 2분에 한개ㅋㅋㅋㅋ 그러므로 만약 건설에 소요된 작업기간이 1년에 3개월로 한정되었다면 더 심각해지지

1분에 4개, 1시간에 240개나 되는 돌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야.

 

근데…

대피라미드의내부의 대회랑과 같은 구조나, 왕의 방, 여왕의 방에 보이는 돌의 배치는 말그대로 그냥 쌓기만 해서는안되는 건축법.

토목 공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대피라미드는 노예나 일반인을 마구잡이로 불러다가 건설된 것이 아니라 극도로 효율적인 관리 체계와

고도의 기술이 제공된 아래에서 매우 숙련된 노동력이 투입된 것을 금방 알 수 있거든

 

새부가 통제는 어케했으며, 나자빠지고 짱박혀서 내가 깍은 돌 평타취?거리면서 놀고있는 애들도 있었을거 감안하면

오늘 계단에 처박아서 고장난 일게이들의 휠체어문제처럼 미스테리는 복잡해지지.

 

 

 

 

 

4.

다른 모든 피라미드들에는 있지만 대피라미드 3개에는 없는 것이 뭘까? 바로 기록이야.

사실 쿠푸왕의 재위기간동안 건축했다는것은 단지 추정일 뿐이야. 쿠푸왕은 자신의 피라미드를 건축하라고 명령한 기록이 없어.

 

피라미드 건축에 대한 추정은 단지 5세기경 이집트를 방문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만 의존할 뿐이야.

피라미드를 안내해준 자가 말하길 ’10만명의 인부가 동원되었고 20년이 걸렸다’ 고 한걸 그대로 기록했는데,

윗글을 보면 택도없는 주작이라 ㅁㅈㅎ를 누르고 싶어질거야.

 

쿠푸왕의 피라미드라 알려진 계기는 쿠푸라는 글씨가 염료로 적힌 돌을 발견하고나서인데

그것은 피라미드의 내부를 조사한 바이스와 힐이라는 사람이 업적을 부풀리기위해 주작한것으로 드러났어.

이따 설명하겠지만 이 인간들은 별의별 주작을 다 하고다녀서 현대 이집트연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전대나 후대의 다른피라미드들과 달리 기자의 3대피라미드는 내 외부에 어떠한 상형문자나 그림, 조각및 장식이 없어.

사소한 건물에도 모조리 그림이랑 글을 남기던 이집트인들이 그럴리없지.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다면 마땅히 일베로 보내자는 글귀나 짤, 어떤기록이 건축물 곳곳에 썰로 남아있어야 하는데 그런것이 일체 없어.

그저 어떠한 기능만을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처럼 보이지.

 

아 머리아파…..근데 다쓸라면 아직 멀었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강 이정도로 해두고 지금까지 조사된 사실들을 얘기해줄게

 

피라미드는 무덤이 아니야.

 

지금까지 그 어떤 피라미드에서도 파라오의 미라와 부장품이 발견된 적이 없어.

대피라미드를 비롯해서 도굴의 흔적이 전혀 없는 다른 모든 피라미드들 모두 마찬가지야.

 

물론 발견된 적이 사실 있긴해. 근데 위에서 말한 바이스와 힐이 발견했어. 주작냄새가 풍기지? 맞아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에서 전혀 다른시대의 관과 미라를 갖다놓고 우기다 지금와서 학자들에게 민주화당했지.

 

그리고 다른 소규모의 피라미드들에서 몇 구의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이는 후대 사람들이 도굴하고 들어와서

지인의 시신을 안치한 ‘도굴장’의 흔적이었지.

 

무덤이 아닌 파라오를 기리는 하나의 상징물이라고 보는것이 옳아.

 

지금껏 무덤이라고 본 이유는 아주 단순해. 피라미드안에 석관처럼’ 생긴 돌 궤짝이 있다는것이 그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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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파라오라면 이중대신병이랑 노짱곁으로 갈때 이딴 형편없는 돌땡이관에 묻히고 싶겠盧 ?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쿠푸, 카프라, 멘카우레왕이 세운것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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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 이 유물의 발굴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어.

 

이 비석은 쿠푸가 이시스 신전과 호루스 예전의 신전에서 발굴한 신들의 상징물을 복원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야.

왕의 장수를 기리는 내용뒤에 놀라운 구절이 등장해.

 

그는 찾았다/ 그 집을(이시스의)/ 피라미드의 여주인 / 스핑크스의 집 옆에서

 

이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피라미드는 쿠푸가 그곳에 도착했을때 이미 세워져있던것이야.

게다가 후대의 왕인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와 카프라왕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스핑크스역시 언급하고 있고

오늘날에도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는 스핑크스의 손상된 위치를 정확하게 가르키고있었어.

 

 

 

 

 

좋아.. 대망의 건축역사에 대해서 소개할게

 

초창기 3왕조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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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심심하면 도굴꾼들한테 탈탈 털리던 마스타바라는 작은 사각형의 무덤들을 대체하고자 세운것이

이 최초의 피라미드라는 설이 있는데 역시 여기서도 아무런 부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물론 무덤이라는 기록도 없고.

원래 사각의 무덤이었는데 그위에 기단을 더 쌓아서 피라미드 형태로 만든것이라고 해.

 

 

또 유명한 피라미드 중 연대기적으로 네번째 피라미드를 살펴봐야해

 

스네푸르의 마이둠 피라미드인데 지금 다 무너져버리고 볼품없이 남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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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피라미드와 동일한 52도의 각도를 채택해 지어졌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무너져버렸어.

 

그래서 스네푸르왕이 다시 지은 것이 바로 굴절 피라미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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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52도로 짓다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무너져 내리니까 각도를 변경해서 43도로 만들었고 덕분에 아직 건재하지

 

 

 

그 후의 피라미드들은 결국 44도 이하의 안전한 각도로 지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인것이 바로 아래의  ‘붉은 피라미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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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스네푸르는 쿠푸왕의 아버지야.

그래서 학자들은 이런 시행착오의 연대기를 거쳐 대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모순이 있는것이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피라미드 공학수치상 완벽한 각도라는 52도로 되어있어

바로 다음턴에 급속도로 발전해서 인정된 각도인 44도를 뛰어넘은 52도, 게다가 규모도 가장 크고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건축물을 한방에 뙇 하고

뽑아낼 수 있다는게 가능할까?

 

답은 ㄴㄴ지

 

또한 기자의 4왕조에 지어진 대피라미드 이후의 피라미드들, 5왕조 시대에 더 발전 계승되었어야 할 피라미드 건축술이 형편없이 퇴화해서

5왕조시대 피라미드들은 오히려 퇴보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해야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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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리르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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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우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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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누스레트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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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누스레트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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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넴헤트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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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드카라

 

 

다 이 모양이야. 각도도 낮고 다 무너져서 언뜻보면 피라미드모양도 아닌게 대다수야.

상대적으로 작고 유치하고, 건축도중에 무너져내린것이 부지기수야.

 

 

파일첨부제한땜에 모아둔 다른피라미드들 일부 생략해서 아쉽다.

 

결국 마치 3개의 대피라미드가 이집트가 세워지기 전부터 완벽하게 원래 존재했고, 

다른 피라미드들이 이를 모방하다가 포기하고 다르게 건축한것처럼 보이지.

 

 

그 근거는 여기에 있어. 아까 말했던 ‘아무런 기록도 전해지지않고, 아무것도 새겨져있지않은 수상한 건축물’

쿠푸왕, 카프라왕, 멘카우레왕은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기록이 없어. 이상하지 전후대의 모든 왕들은 다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들이 건축했을거라 추정하는 이유는 피라미드 각 피라미드 주변에 세워진 소규모의 사원들때문이야.

하지만 옆에 그들의 사원이 있는 것이,  피라미드를 그들이 세웠다고 입증하는것은 아니야.

 

이어서 집권한 쿠푸,카프라, 멘카우레 왕은 전대 왕들처럼 대 피라미드를 모방해서 자신의 새 피라미드를 짓는 것 대신

차례로 이미 있던 건축물 옆에 자신들의 사원을 지은것으로 대체했다는 설이 유력해.

 

그리고 그 후대의 왕들은 그 3개의 피라미드가 다 선왕들에 의해 먹혔으니 또 다시 자신만의 피라미드를 세울 필요성을 느끼고

대 피라미드들을 모방해 건축했지만기술력 부족으로 윗 사진들처럼 처참하게 무너져버린거지.

 

 

 

 

내부도 완전히 다르지. 기자의 대 피라미드들은 지하실과 별도로 왕의방, 왕비의 방이라 불리는 두개의 방을 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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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을 제외한 전대와 후대의 피라미드들은 삼각뿔 중심에 방이 없어.

대피라미드처럼 다른방이 있는지 조사해보아도 결국 발견하지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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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후 할것없이 모두다 지면에 붙어있는 단순한 형태의 방과 지하실만을 가지고있어.

 

고차원적 기술이 적용된 기자의 피라미드들은 내부에 수직압력을 충분히 견대낼 수 있는

고차원적 구조의 방들을 가지고있는데 비해 확실한 건축기술의 퇴보라고 보여져.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

 

이집트인들은 물론이고 후대사람들 모두 대 피라미드의 중심방(왕의방, 여왕의방)의 존재를 아무도 몰랐다는 거야.

이집트인들도 대피라미드에는 오직 지하실만이 있는줄 알고있었어.

 

어떤 기록에도 피라미드에 중심방이 있는지 기록도 없었고 이집트의 후손들도 알지 못했지만

9세기에 알 마문이라는 탐험가가 통로로 들어가서 지하실로 내려갔는데 지하실에 아무것도 없으니깐

이상해서 복도를 여기저기 두드리고 다니다 복도의 벽너머에 텅빈 공간이 있음을 직감했어

 

감쪽같이 감춰진 화강암 입구 너머로 막혀있는 돌덮개 윗쪽을 우회해서 파냈고

그렇게 대회랑과 방들을 발견하게 된거야. 지금 관광객들은 그 통로로 들어가곤해

 

 

이제 다시한번 느끼게 된 게이들도 있을거야.

전대와 후대의 피라미드들이 이 3개의 대피라미드를 겉모습만 모방하려고 했다는점을.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오지.

 

 

 

대피라미드는 이집트가 있기전에 있던 건축물이었다는 것.

 

 

 

이것을 뒷받침하는 기록은 최초의 문명으로 불리는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서판에서 발견돼.

 

 

 

이건 다음편에서 자세히 다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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