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난했던 썰.ssul

요즘 가난한 집 특징들 보고 공감도 되고우리집이 이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물건정리 하면서 옛날 생각도 나고 그냥 끄적여 본다.

일단 우리집은 처음부터 가난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결혼을 하셨고아버지는 대기업을 다니시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정말 평범한 중산층의 표본이었다부모님이 내가 막 태어나고 한 2년 정도는 그렇게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함은 없이 살았다고 하시니까그대로 쭉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ㅋㅋ

97년도에 우리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증을 서주시고주식까지 파시면서 돈도 꽤 빌려주셨다그런데 정말 하나같이 모두 뒤통수를 쳤다.(물론 지금도 안 갚음 ㅅㅂ놈들덕분에 우리 아버지는 그동안 모았던 돈은 물론이거니와 할아버지가 주신 재산들까지 잃으시고당신이 쓰지도 않은 돈까지 빚을 지게 되셨다 ㅠㅠ불쌍한 호구 아버지

참 사람 인생이라는게 안좋은 일은 한번에 온다고 IMF가 터지고 우리 아버지도 회사 구조조정에 걸려 회사를 나오게 되신다당장에 수입은 끊겼지낳아 논 새끼들은 키워야지 결국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우리가족은 아버지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돌아왔다고 무슨 뽀족한 수가 있겠냐ㅋㅋㅋㅋ 그냥 막노동을 하셨지엄마는 나랑 동생이 너무 어리니까 밖에서는 일 못하시고 집에서 십자수 같은 소일거리들을 하셨다그 때 내가 정말 기억하는 일 하나가 어느 날 유치원을 갔다 왔는데 나를 보시더니 너가 그렇게 좋아하는 수박을 여름에 한 통 제대로 못 사주는 구나하면서 우시는 거다 ㅠㅠ 나도 그 때 영문도 모르고 같이 울었음. 아마 버는 돈은 다 은행이자로 나가고 힘드셔서 그러셨을 것 같다.

당장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나랑 동생은 장난감 받기도 그렇게 힘들었었다. 거의 다 친척들이 쓰던거 물려받거나 할아버지가 사주시는게 다였지. 내가 정말 좋았던 기억은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탈출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오시더니 “내일이 어린이날이니까 원하는 장난감 사줄게”하고 나를 데려가서 그 당시 초딩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누가누가 더 좋고 강한거 가지고있나 경쟁하던 탑블레이드 팽이 여러개와 경기장을 사주셨다. 어찌나 그게 행복하던지 집에 오는길에 부모님 손잡고 쉬지않고 조잘조잘 거렸던게 생각이 난다.

나랑 동생은 학원도 못다녔고 집에서 계속 엄마가 가르쳐주셨다. 옷도 좋은 브랜드는 잘 못입었다. 지하상가 가서 사 입고 그랬다. 또 친구들 불러놓고 롯x리아에서 생일파티도 못했기에 우리집이 어느정도 어렵다는 것을 알고 컸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 우리집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온다. 그 때가 학교마다 수학여행이나,수련회를 많이 다니던 시기였고, 나랑 동생도 수학여행과 수련회 가기 1주일 전 쯤 됐을 거다. 벌써부터 수학여행에 갈 생각에 들떠있던 나는 신나서 집에 들어왔는데 집에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 부모님은 땐다고 때셨는데 내 책상에 붙어있던 것을 못보셨는지 그대로 남아있는걸 내가 봐버린거다. 빨간 종이에 가압류 뭐 어쩌고 저꺼고 써 있었는데, 정확한 뜻은 몰라도 느낌은 있었다. 정말 겁이나서 그 날 하루종일 네이버 지식인 가서 검색하고 그랬다. 그리고 나랑 동생은 한 명이라도 안가야지 집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서로 수학여행 가라고 싸웠다….ㅋㅋㅋ 형이 가라 아니다 너가 가라 이런식으로ㅠㅠ근데 결국 수학여행은 둘 다 갔다ㅋ

빨간 딱지까지 붙었었지만, 어찌어찌 해결이 되고 어머니도 얘들 컸다고 나가서 일을 맞벌이를 하기 시작하셨지.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밥도 해먹고, 설거지도 하고 그랬다. 부모님 속 안썩이고 싶어서. 그래서 그런지 인간극장에서 어린 얘들이 고생하는거 보면 정말 짠하고 남일 같지 않고 그런다ㅠ 내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하시던일이 잘 풀리게 되고, 어머니도 꾸준히 일을 하셔서 빚도 차근차근 갚아나가고, 우리 생활도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번에 이사가면서 남아있던 빚까지 다 갚고, 꽤 큰 집으로 이사간다. 우리가 정말 이런데서 살아도 되나 싶을정도로ㅋㅋㅋ지금은 겨울에 수박도 마음껏 사먹을 수 있게 됐다ㅋㅋㅋ

솔직히 말하자면 사춘기 때랑은 부모님 원망 정말 많이 하고 그랬다. 친구들보다 내가 초라하게 사는 것 같아서 여기에 적지는 않았지만 가난 때문에 꽤나 겪었던 서러움도 많았고…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소소했지만 가족끼리 재밌게 살았던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께 정말 고맙고, 두분다 가정을 위해 정말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다. 우리가 사달라는거 다는 못 사주셔도 최대한 당신들 아껴가면서 우리을 위해 돈을 쓰시면서 

요즈음 다들 많이 김치년 김치년 하는데 나는 정말 우리 어머니 보면 그런 여자가 있는가 싶다정말 명품 한번을 사지 않으셨고옷도 자신을 위해서도 별로 사지 않으셨다없는 살림에 가계부 꼬박꼬박 쓰시고 저축 성실히 하시고아버지한테 내조 잘해주시고내가 여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아침을 안 차려주신 적이 없었다초중고딩 때 소풍간다고 하면 출근이 6시라도 도시락 싸주신다고 4시에 일어나셔서 매번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만들어 주셨다.

아버지도 정말 노력 많이 하셨다한번도 집안에서 우리가 보는 앞에서 술을 드시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묵직하게 가장의 역할에 충실히 해주셨다옛날에 많이 서로 싸우시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엄마가 도망가지 않고 살아줘서내조 잘해줘서 바깥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시고어머니도 원망스럽긴 했지만 아버지가 빌린 돈도 아니고다른 길로 한 번도 안 새시고 가족을 위해 일하셔서 버텼다고 그러시더라 ㅋㅋㅋ 

정말 쓰고 싶은 썰들이 더 많지만 지루해 하니까 그만 쓸게ㅎㅎ

썰주화 줘도 상관없고(너무 많이 주지는 마라ㅜ) 그냥 이런 놈도 있구나 하고 게이들도 희망가지고 살면 언제가는 풀릴꺼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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