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친여자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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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 살던 고향장터에 미친여자가 하나 있었다

여름에는 두꺼운 잠바를 걸치고 겨울에는 얇은 블라우스 한장만으로 이가게 저가게 기웃기웃하던 여자였는데

그여자를 사람들은 귀득이라고 불렀다

오일장날만 되면 이가게 저가게 왔다갔다 하며 보는 사람마다 일일이 인사하는 귀득이를 마음씨 좋은 시장어른들은 붕어빵이며

사탕이며 동전 닢 따위를 쥐어주며 ‘귀득이 왔나?’ ‘안춥나?’ ‘안듭나?’ 하며 나름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가끔 엄마 손잡고 시장에 가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으면 그 미친여자는

‘언니 오늘은 애기랑 같이 왔니껴?’ ‘언니 오늘은 뭐 샀니껴?’

졸래 졸래 따라다니며 물었고

엄마는 ‘그래 우리 아들캉 왔다’ ‘오늘은 제사지낼라고 돔베기 사간다 아이가’ 하며 귀득이의 장단을 맞추고 100원짜리 동전하나를 쥐어주고는 했다

100원짜리 동전하나에 참 기분좋게 웃고는 인사한번 꾸벅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 뒤를 따라다니던 그 여자..

어린 마음에도 신기하기도 약간은 무섭기도 해서 나는 엄마 뒤에 숨어 힐끔힐끔 그여자를 훔쳐보고 있었다

내가 유달리 엄마따라 장에 가고 싶어했던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오락실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유달리 깡촌이라 변변한 놀거리도 없었고 사람이라고는 늘 보는 동네꼬맹이들과

놀이감이라고는 딱지나 구슬따위가 전부였기에

4킬로정도 떨어진 시장 한구석에 있던 전자오락실은 나에게는 신세계와 마찬가지였다

처음 오락실을 접했을때는 그림이 움직인다는 사실과 그 기묘한 뿅뿅하는 소리에 신기하다못해 경외스럽기까지 했고

오죽하면 오락실을 가보겠다는 생각하나로 혼자 장터에 나와 오락삼매경에 빠져있을때

소식없이 사라져 밤까지 돌아오지않는 나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혼쭐이나고 있었고

동네 아저씨는 날 찾으려 온동네를 다 뒤지고 다닌적도 있었다

그날 집에가서 생전처음으로 아빠아닌 엄마에게 두들겨 맞고 눈물콧물 다 흘리며 용서를 빌었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그 버릇이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어느때 쯤에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오락실로 향했고

외동아들에 대해 나름관대했던 아버지와 어머니도 내 오락실 출입을 막지는 않으셨다

어릴적 용돈이야 넉넉하지 않아서

오락실에서 오락 한 두 판이면 구경만 하다 오는 신세였지만

그 오락실이 너무 좋았고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다오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나의 뒤에서 누군가가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니 오락하고 싶나?’

따듯하다못해 뜨겁던 손길에 돌아보니 귀득이였다

아무말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 귀득이가 내 손을 잡아끌고 어느 오락기 앞으로 앉혔다

주머니에서 50원짜리 동전몇개를 꺼내서 내 옆자리에 앉아 오락기에 동전을 넣어주며

가만히 화면을 보고 있던 그 얼굴..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삼십대 초중반 정도..

햇볕에 그을리고 군데군데 상처도 있었고 이빨하나가 깨져있었지만

그리 못나지 않았던 얼굴이 기억난다

그때는 그저 오락을 시켜주는 그 미친여자가 싫지 않았고

둘을 나란히 앉아 동전이 없어질때까지 오락을 하다가 주춤주춤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아마 내가 그 여자에게 인사를 한 기억은 없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까

문득 뒤를 돌아보니 땅거미진 시장골목에서 귀득이가 따라왔다

선명하리만큼 노란 블라우스에 짙은 땡땡이 무늬의 긴치마.. 한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든 여자..

나는 아직도 그 모습을 기억한다

내가 돌아보는것을 알아챈 귀득이는 나에게 뛰어왔고

어린마음에 나는 무서움이 점점커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잡히면 때리거나 해꼬지를 할것 같은 어슴푸레한 공포심..

오락을 시켜주던 그녀와 날 쫒아 오는 그녀는 뭔가 다른것 같다는 두려움

이유모를 공포에 도망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땅바닥에 한번 구르고 난 후

아픈 무릎을 부여 잡고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우야노’ ‘아이고 우야노’

옆에 비닐봉지를 내 팽겨치고 내 무릎을 보고 동동 발을 구르는 그여자..

어느덧 내 옆에 서 걱정스러운 눈과 때 묻은 손으로

내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던 그 여자..

날 때리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걱정해 주는 그 얼굴을 보자

왠지 모를 서러움과 안도감에 나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안절부절 못하며 때묻은 손으로 내 무릎을 쓰다듬고

노란 블라우스로 피를 닦아내던 귀득이..

‘우야노’만 반복하던 그 여자가 서서히 나를 일으켰고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귀득이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너거집 안촌이가 바깥촌이가?’ ‘내 언니야 (우리엄마) 잘안다’

이것저것 물으며 내손을 잡고 마을로 천천히 걸어갔고

나는 왠지 모를 따듯함에

아까의 무서웠던 기분보다 든든한 보호자.. 아니면 친근한 동네 어느 이모를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걸어 동네 어귀쯤 들어섰을때

저 멀리 동네 준구 아버지가 보였을때 쯤.. 귀득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애기야! 내 인제 간데이’

귀득이는 환하게 웃으며 뒤로 몇걸음 걷다가 다시 내게로 와 검은 비닐봉지를 내 밀었다

‘집에 가가 무라’

그 말을 뒤로하고 이미 어둑한 길을 걷는 귀득이를 한참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를 펼쳐 봤다

거기에는 젤리 몇개와 박하사탕.. 그리고 아마 지난 장날에 시장에서 받았는거 같은

눅눅한 옛날 과자 몇개가 들어있었다

눅눅한 과자보다 평소에 좋아하던 젤리하나를 까 먹고 길을 돌아봤을때

이미 멀어진 귀득이가 있었고

나는 그녀가 보든 안 보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날이후로 

귀득이는 내가 엄마 다음으로 따르는 여자가 되었고

귀득이는 항상 내 보호자처럼 시장오락실 한켠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가끔 동전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오락기에 동전 몇개를 넣어주고는 하였다

계절이 지나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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